항목 ID | GC00600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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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村里 |
영어음역 | Deokch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덕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병담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남원시 덕과면에 속한 법정리로, 덕동리와 수촌리를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남으로는 사매면, 북으로는 보절면, 그리고 오수면·지사면과 인접해 있다. 인물로는 진주영장을 지낸 김종록이 있고, 신태의의 효자정려가 마을 앞에 세워져 있다.
[명칭유래]
덕촌리는 본래 남원군 덕고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덕동리와 수촌리, 고정리, 용주리의 각 일부와 장수군 외진전면의 시목리 일부를 병합하여 덕동과 수촌의 이름을 따서 덕촌리라 하였다.
수촌리는 1443년 금녕김씨가 정착할 당시 유지앵소 형국, 즉 버드나무 가지에 꾀꼬리 집이 있는 혈에 정착하였다고 하는데, 마을이 숲으로 쌓여 숲말로 불렀으나,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수풀 수(藪)자와 마을 촌(村)자를 써서 ‘수촌(藪村)’이라 부르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수촌마을의 형성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1443년경 금녕김씨가 정착한 후 1676년 순창에서 안동권씨가 이주하여 먼저 정착한 금녕김씨와 융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덕촌리에 편입되었다.
덕동리는 마을 부근 야산에서 석기시대의 유물인 절문토기 조각 및 기와 조각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촌락을 이루고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한 물증은 없다. 임진왜란 때 평산신씨 신상순과 전주최씨가 피난을 와 정착하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최씨는 임실군 지사면 방계리로 이주하여 정착하고, 신씨는 덕동으로 옮겨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뒤 김해김씨 김종록이 벼슬을 그만두고 영남으로부터 이곳으로 이주함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덕우리, 또는 덕고리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덕촌리로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면서 수촌리와 덕동리는 남원시 덕과면 덕촌리의 행정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성산의 능선을 따라 산수가 수려하고, 야산이 완만하게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돌아 과수 및 원예 작물 재배에 적지이다.
[현황]
덕촌리의 총면적은 3.47㎢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96세대에 197명(남자 99명, 여자 9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 소득원은 미맥 위주의 농업이며, 부업으로 인삼 경작과 남원배를 생산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국도 17호선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어 남원~전주 간 교통이 원활하며, 최근 새로운 산업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