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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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外乾里 |
영어음역 | Oegeon Maeul |
영어의미역 | Oegeon Village |
이칭/별칭 | 외건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건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석홍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에 속하는 건지리를 관할하는 행정리.
[개설]
외건리는 내건리·지산리와 함께 법정리인 건지리에 속해 있다. 외건리는 서리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는 언덕이 있어, 이 언덕 사이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앞쪽으로는 확 트인 농경지가 있다.
[명칭유래]
원래 이 마을은 물이 귀하다 하여 ‘마를 건(乾)’자를 써서 건지산(乾芝山)이라 하였는데, 외건은 바깥건지라 하여 붙게 된 이름이다. 옛날 주씨가 권세를 누리며 살 당시 중만 오면 ‘태테’를 먹이곤 하였다. ‘태(太)테’란 너른 보자기에다 마른 콩[太]을 말아 사람의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듯 두른 다음, 콩을 말아올린 띠에 물을 부어 콩이 불어나면서 옥조이는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중이 마을에 들어와 시주를 구하자 주씨는 여느 때처럼 태테를 매려 하였다. 그러자 다급해진 중이 태테만 매지 않으면 물을 해결해준다고 하였다. 주씨는 마을의 가장 큰 문제인 물 부족을 해결해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그 중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중은 마을 한가운데 큰 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를 베면 물이 있다고 말하였다. 곧 마을 장정들을 시켜서 그 전나무를 베니 그곳에서 물이 나와 마을의 부족한 물이 해결되었다. 그러나 배형국인 이 마을에서 전나무는 돛대였으니, 돛대 없는 배는 항해를 할 수 없는 법이다. 결국 주씨는 쇠퇴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형성 및 변천]
외건리는 내건마을과 같이 운봉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건지산 또는 건지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에 따라 내건리와 외건리 일부를 병합하여 건지리라 통칭해서 남원군 동면에 편입되었다.
고려 말기인 1360년(우왕 6) 이성계 장군이 왜장 아키바쓰[阿只拔都]를 황산에서 물리칠 당시 주씨가 마을 서쪽 250m에 위치한 감나무골에 피난하였다. 그 후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배혈에 주씨가 자리 잡으면 부귀를 누리다 하여, 현재의 마을로 옮겨 권세를 누리며 살았다.
1592년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동복오씨를 비롯한 여러 성씨가 입주하자 주씨들은 밀려서 모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현재 동복오씨와 윤씨·양씨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자연환경]
인월에서 군도 25호선인 유곡선을 따라 4㎞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로, 내건마을 서편 풍천이 일구어낸 넓은 들녘에 위치한다. 풍천을 넘는 갈건교를 건립하여 일찍부터 아영면과의 왕래가 편리하고, 주민들은 갈계 쪽을 이용하여 많이 통행하고 있다.
[현황]
1970년대 초반만 해도 낙후된 마을이었다. 1972년부터 새마을 사업을 통하여 농로 1200m를 신설하고, 1975년 IBRD 차관 사업으로 잠수식 교량인 갈건교 20m를 가설하면서 발전을 이루었고, 아영면과의 교통도 원활해졌다.
1979년부터는 정기 시외버스가 하루에 4회씩 통과하여 주민들의 사회·경제권이 넓어졌으며 시장과 면소재지와 주민들과의 생활권이 일원화되었다. 1975년부터 고랭지 여름 채소를 재배하여 농외 소득을 올려왔고, 기타 잠견 및 유실수 등을 통해서도 소득이 증가했다. 현재는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면서, 고랭지 채소 재배와 흑돼지 사육 및 공예 사업 등을 통해 높은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총면적은 137.9㏊로 인월면 전체 면적의 3.7%를 차지하며, 농경지는 밭이 27㏊(19.5%), 논이 62.1㏊(45%)이다. 밭이 경지 면적의 30.3%를 차지하고 있으며, 임야가 30.2㏊(21.9%), 기타 18.6㏊(34.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