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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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黃里 |
영어음역 | Junghwa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정섭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 뒷산 백운산 기슭에 황강사(黃岡寺)란 절이 있었고, 북쪽으로 약 500m 위치에 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복치혈(伏雉穴)이 있어 황강사의 황(黃)자와 복치혈의 치(雉)자를 따서 황치(黃雉)라 했다. 한편 황치(黃雉)의 치(雉)를 고개 치(峙)로 써서 황치(黃峙)골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을 주변의 세 개의 자연 마을 중 가운데 있어 중치, 중몰이라고 불렀는데 한자로 중황(中黃)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395년(태조 4)에 조중삼(趙重三)이 관직을 버리고 산골을 찾아 수양을 하러 가던 중 전라남도 구례에서 이주를 해와 정착하였다. 1600년경 강화노씨(江華魯氏)들이 임진왜란을 피해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되었으나, 노씨들은 하황으로 이주하여 결국 조씨와 박씨가 마을에 대종을 이루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래 운봉군 산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상황리(上黃里)와 하황리(下黃里) 일부가 병합되어 중황리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와 남원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가 되었다. 부근의 마을이 세 뜸으로 나뉘어 그중 가운데 위치하므로 중황(中黃)이라 불러 현재에 이른다.
[자연환경]
산내면의 동부권역으로 산간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뒤에는 1,186.7m의 삼봉산이 솟아 있다. 삼봉산을 분기점으로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과 경계를 이룬다. 삼봉산 기슭에 고로쇠나무 군락지가 있다. 해발 400m의 고지대로 농업을 주업으로 한다. 마을 뒤로는 토종 흑돼지 사육 시설이 점차 늘고 있어 환경 오염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와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최고 5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는 집중 호우 현상을 보였다.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도로와 가옥, 농경지가 침수되는 등 비 피해가 컸다.
[현황]
마을의 총 면적은 개간지 임야를 포함하여 82.9㏊로 산내면 전체 면적의 3.2%를 차지한다. 경지 면적은 45.4㏊로, 밭이 13㏊, 논이 32.4㏊이다. 중황리에는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159세대 337명(남자 169명, 여자 16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교통이 불편한 산간 오지이므로 경제 순환이 안 되어 오랫동안 영세성을 면치 못하다가 1960년 진등을 개간하여 5가구가 정착하게 되었다. 1970년 산업도로 2㎞를 개설하여 지방도와 연결시켜 우마차가 마을까지 통행하게 되었다. 아울러 1997년에는 오지 개발 사업으로 중황리 일대 확·포장 사업을 추진하였다.
1974년에는 새마을회관 및 공동 창고를 건립하였으며 12월에는 전기가 들어왔고, 이후 회관은 노후하여 1995년 조적조 스라브로 신축하였으며, 1977년에는 한지 공장을 건립하여 하천에 흩어져 있는 원시적인 공장이 없어지고, 기계화된 한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 인력 부족과 경쟁력이 뒤떨어져 활성화를 기하지 못하고 2~3농가만이 옛 생산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2007년 현재에는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1978년에는 공동 창고를 확장하여 양곡을 보관하였으나 회관 신축으로 철거되고 말았다.
사향길인 한봉꿀 생산을 위해 곳곳에 사업장이 소규모로 자리해 있다. 농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으나, 농외 소득원이 급증하고 있으며 농경지의 50% 이상이 천수답인 데다가 토질이 척박하여 면내에서 경지 면적이 제일 적다.
가가호호 감나무가 무성하고, 옛날부터 당산(堂山)이 있어 매년 음력 정월 초에 당산제를 올려 일 년 동안 마을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풍습이 현재에도 행하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