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788 |
---|---|
한자 | 高得賚 |
영어음역 | Ko Deukroe |
이칭/별칭 | 은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송만오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용담(龍譚). 자는 은보(殷甫). 현감 고익흥(高益興)의 후손이며, 종사랑 고효륜(高孝倫)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고득뢰는 기절이 있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한 뒤 감찰(監察)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에는 평창현감(平昌縣監)에 제수되었으나, 완강하게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고득뢰가 평창현감을 사양한 이유는 평창은 영동의 구석진 고을이어서 적병을 피할 만한 곳이지만, 그로서는 적을 물리치는 데 마음을 두었지 자신의 안전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득뢰는 충의공(忠毅公) 최경회(崔慶會)를 따라 무주·거창·개령의 적을 차단하였고, 이어서 진주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힘껏 싸웠으나 마침내 성이 함락되어 최경회와 함께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