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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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彧 |
영어음역 | Kim Uk |
이칭/별칭 | 비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송만오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가계]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비연(斐然). 고려 때 시중을 지낸 위열공(威烈公) 김취려(金就礪)의 후손이다. 충경공 김경직(金敬直)의 10세손이며, 봉사(奉事) 김중흥(金重興)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김욱은 그릇이 넓고 지략이 뛰어나 광해군 때 문음(門蔭)으로 직장(直長)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인목대비 폐비사건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전라북도 남원의 추하(楸下)에 내려와서 은거하였다.
1627년(인조 5)에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사촌 아우 장무공(壯武公) 김준(金浚)이 안주목사로 있다가 적과 싸워 순절하자, 안주로 달려가 상여를 운반하여 고부의 선영(先塋)에 장사지냈다. 그리고 함께 죽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겼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여러 고을의 의사들이 뜻을 같이하여 궐기하자, 김욱도 여산으로 달려가 많은 계책을 세우고 청주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미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집으로 돌아왔다가, 수 일 만에 화병이 들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