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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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之仁 |
영어음역 | Park Jiin |
이칭/별칭 | 예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예경(禮卿). 정국공신(靖國功臣) 좌찬성(左贊成) 밀원부원군(密原府院君) 박건(朴楗)의 7세손이고, 진사(進士) 박용현(朴庸賢)의 증손이다. 대동찰방(大同察訪) 박석봉(朴碩鳳)의 손자이며, 훈련부장(訓練部將) 박응사(朴應士)의 아들이다.
아들 박우춘(朴遇春)은 공조좌랑(工曹佐郞)이었고, 손자 박승원(朴昇元)은 생원(生員)이었다. 그의 7세손 박만석(朴萬錫)은 효행이 뛰어나 호조참판에 증직되었고, 1886년(고종 23) 정려가 내려졌다.
[활동사항]
박지인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당시 별장(別將)이던 박지인은 서울에 머물면서 적과 힘을 대해 싸웠으며 강화도에 들어가서 적과 대치하였다. 1637년(인조 15) 강화성이 함락될 때 순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