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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사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0866
한자 邊士貞
영어음역 Byeon Sajeong
이칭/별칭 중간(仲幹), 호는 도탄(桃灘)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성별
생년 1529년(중종 24)연표보기
몰년 1596년(선조 29)연표보기
본관 장연

[정의]

전라도 남원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

[가계]

본관은 장연(長淵), 자는 중간(仲幹), 호는 도탄(桃灘). 참판(參判)을 지낸 수정(水亭) 변처후( 邊處厚)의 5세손이며, 생원(生員) 변호(邊灝)의 아들로 1529년(중종 24) 남원에서 출생하였다. 남원의 운봉(雲峰) 도탄(桃灘)에 살았으므로 도탄선생이라 칭하였다.

[활동사항]

일재(一齋) 이항(李恒)과 옥계(玉溪) 노진(盧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3년(선조 16)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參奉)에 제수되었다. 이 때 율곡(栗谷)과 우계(牛溪)가 동인의 배척을 받자 장계를 올려 그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원에서 2,000여명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정염(丁焰), 양사형(楊士衡) 등이 그를 의병장으로 추대하였으며, ‘적개장군(敵愾將軍)’이라 하였다. 체찰사(體察使) 정철(鄭澈)이 자신의 비장(裨將) 이잠(李潛)을 보내어 그를 돕게 하였다. 순찰사 권율이 수원 독성(禿城)에서 구원을 청하자 의병장 임희진(任希進)과 함께 이를 구출하였다. 호남을 지키기 위하여 옥천(沃川)으로 내려와 상주·선산 등지에 주둔하면서, 황간·창원·함안·성주·대구 등지에서 적을 무찔렀다.

1593년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밖에 있으면서 군량을 조달하는 재외운량장(在外運糧將)에 추대되어 회주(回住)와 산음에 가서 군량 수백석을 구하여 왔으나 곧 성이 함락되었다. 1594년 남원수어장(南原守禦將)에 임용되었으며, 이때 승려 의영(義英)을 시켜 교룡산성을 수축하게 하였다. 1595년에는 첨정(僉正)으로 승진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596년(선조 29) 피로가 쌓여 67세를 일기로 졸하였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자 정염이 “변사정이 있었다면 적이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겠는가”라고 한탄 하였다. 그의 증손 변유(邊瑜)는 병자호란 때 창의하였다.

[저술 및 작품]

그의 문집인『도탄집(桃灘集)』이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고 장령(掌令)의 증직을 내렸다. 운봉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10.12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1) 생년 1592년(중종 24) ->생년 1529년(중종 24) 2) 참판(參判) 수정 처후(水亭 處厚)의 5세손이며 ->참판(參判)을 지낸 수정(水亭) 변처후(邊處厚)의 5세손이며 3) 생원(生員) 호(灝)의 아들로 1592년(중종 24) 남원에서 출생하였다 ->생원(生員) 변호(邊灝)의 아들로 1529년(중종 24) 남원에서 출생하였다 4) 그의 증손 유(瑜)는 병자호란 때 창의하였다. ->그의 증손 변유(邊瑜)는 병자호란 때 창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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