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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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亨遇 |
영어음역 | Yang Hyeongu |
이칭/별칭 | 자발,동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윤진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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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 |
성별 | 남 |
생년 | 1574년 |
몰년 | 1623년 |
본관 | 남원 |
대표관직 | 성균관전적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발(子發), 호는 동애(東崖). 용성군 양주운(梁朱雲)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집의 양의(梁艤)이고, 아버지는 청계 양대박(梁大撲)이다.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아버지 양대박이 의병을 일으켜 출전하자, 19세의 나이에 불과하였으나 종군하여 운암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1603년(선조 36)에 진사시에 합격했고 이어 1617년(광해군 9)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을 지냈다.
1618년(광해군 10)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자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이로 인해 함경도 회령에서 6년간 귀양살이를 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에 충청도사로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불행히도 도중에서 갑자기 사망하였다. 이 때 그의 나이 50세였다.
[학문과 사상]
그의 형 양경우와 함께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준결하였으며 충효가 돈독하고 문장에 능하였다.
[저술 및 작품]
1796년(정조 20)에 어명으로 아버지 양대박의 유고인 『양대사마실기(梁大司馬實記)』와 형제의 유문이 함께 간행되었다. 그의 묘갈명은 홍문관대제학 황승원(黃昇源)이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