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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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惟馨 |
영어음역 | Yi Yuhyeong |
이칭/별칭 | 덕보,춘파,소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윤진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의병.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보(德甫), 호는 춘파(春坡).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금헌(琴軒) 이대윤(李大胤)이고, 아버지는 판서에 증직된 이엽으로, 지금의 임실군 둔남면 둔덕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활계 이대유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참봉에 제수되었다가 의금부도사로 승진하였으나 광해조에 이르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1623년(인조 1)의 인조반정 이후 다시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고향에 있다가 이괄의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우 이국형과 함께 격문을 발하고 영광의 진사 신유일(辛惟一)과 함께 창의하여 군졸과 군량을 모았으나, 적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해산한 뒤 모은 군량은 관가에 보냈다. 이에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가 그를 포상하여 줄 것을 조정에 상신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우 이국형과 함께 다시 의병을 모았으나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와서 평생을 은거하며 지냈다.
[저술 및 작품]
광해조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금오가」라는 시구를 남겼으며, 시국을 돌아보고 걱정하며 스스로 소옹(嘯翁)이라고 호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