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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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太尙文 |
영어음역 | Tae Sangmun |
이칭/별칭 | 진옥,삼현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성미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협계(峽溪). 자는 진옥(振玉), 호는 삼현정(三賢亭). 판서(判書) 태응진(太應辰)의 후손이며, 주부(注簿) 태귀생(太貴生)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태상문은 기사에 능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원부사가 그에게 장사 1,000명을 거느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형제·숙질(叔姪) 등과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갔다.
태상문은 온 힘을 다하여 싸우면서 많은 적병을 죽였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아버지 태귀생과 숙부 태천생이 적의 화살에 맞아 순절했다. 태상문은 두 사람의 시신을 수습하여 성 밖에 매장하고 돌아갔으나, 성은 이미 함락되었다.
뒤에 태상문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서제(庶弟) 태팔회(太八回), 조카 태복련(太福連) 등과 더불어 싸움터에 나갔다. 이 싸움에서 아우와 조카가 모두 적탄에 맞아 죽었다.
태상문은 통곡하며 말하기를 “아버지와 숙부, 아우와 조카가 모두 임금을 섬기다가 순절하였는데 나만이 어찌 살겠느냐!”하고 적진으로 달려가 많은 적을 죽였다. 태상문의 후손들은 전라북도 남원군 대산면에서 대대로 살고 있다.
[상훈과 추모]
난이 끝난 뒤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치하하여 훈련원판관에 제수하였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하였다. 죽은 뒤에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추증(追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