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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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萬里 |
영어음역 | Ha Manri |
이칭/별칭 | 자장,양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자장(子長), 호는 양진(養眞). 안렴사(按廉使) 하중용(河仲龍)의 후손이며, 도사(都事) 하극윤(河克潤)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하만리는 학행이 뛰어나고 언 강에서 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할 만큼 효성이 지극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폄재(砭齋) 최온(崔蘊), 당촌(塘村) 황위(黃暐)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북진하였다.
가는 도중에 여산에서 화의(和議)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 뒤에 단(壇)을 쌓고 아침마다 관복을 입고 북향사배(北向四拜)하였으며, 존왕양이(尊王攘夷)의 마음가짐으로 초야에 묻혀 지냈다.
[저술 및 작품]
문집인 『양진당유고(養眞堂遺稿)』가 남아 있다. 정기(鄭琦)의 서(序)와 9세손 하영진(河永晉)의 후지(後識)를 붙여서 목활자본 1책으로 1911년에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