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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사 남원분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067
한자 衡平社南原分社
영어음역 Namwon Hyeongpyeongsa
영어의미역 Namwon Social Equality Society
이칭/별칭 남원 형평분사,남원형평사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남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일제강점기 사회운동 단체
설립연도/일시 1926년 7월 28일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37년연표보기
설립자 최영석

[정의]

1926년 7월 28일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 설치한 형평사의 분사.

[개설]

형평사 남원분사는 인권 해방, 형평 운동, 합리적인 사회 건설 등의 강령을 내걸고 설립된 사회운동단체인 형평사의 하부 단체다. 1923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처음 설립된 형평사는 대중적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남원에서는 1926년 7월 28일 최영석을 주도로 하여 설립되었다.

[설립목적]

형평사 남원분사는 민족의식 고취와, 자유·평등·권익의 쟁취를 통한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전라북도 남원의 지식인 60여 명은 1926년 7월 28일 사회적 민족의식을 고취할 만한 교량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양림에 모여 형평사 남원분사의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날 형평사의 요지를 알리는 전단 2,000여 매를 시가지에 살포했고, 최량석의 개회와 이동한의 사회로 위원 선거와 관공서의 차별 대우 등에 관한 사항을 처리하였다.

또한 당일 오후 8시에는 임시 사무실에서 제1회 집행위원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조직 체계로는 분사장 최영석, 총무 이이동, 서무 최홍석, 재무 이석풍, 평위원 조소남·변수용·박재·원복술·최원석이 선출되었다.

1929년 3월 경찰국의 전국 검거 선풍에 간부들이 체포되면서 활동이 침체되었고, 이후 계속된 일제의 압력과 1937년 5월 1일 신간회의 해체 여파로 중앙회가 해체되면서 남원분소도 함께 소멸되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전라북도 남원 지역 관공서에서의 차별 대우 해소 투쟁을 벌였고, 형평사 청년회를 운영하였다. 야학 개설 등 인권 해방 및 형평 운동, 합리적인 사회 건설을 위한 제반 업무를 수행하였다.

[활동사항]

야학을 개설하여 형평사 남원분사에 입회한 청소년들에게 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을 주도하였고, 연극단을 통한 농촌 계몽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나아가 반제국주의 투쟁 의식과 자유·평등·권익 쟁취를 위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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