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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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歸政寺址 |
영어음역 | Gwijeongsaji |
영어의미역 | Gwijeongsaji Archeological sit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1042[대상2길 246]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이석홍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8월 16일 - 귀정사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7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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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귀정사지 전라북도 기념물 재지정 |
성격 | 절터 |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515년 |
소재지 주소 | 전라남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1042[대상2길 246] |
소유자 | 귀정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 귀정사지의 터.
[개설]
귀정사는 515년(무령왕 15)에 현오국사(玄梧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임금이 이 사찰에서 고승의 설법을 듣고 3일간 머무르고 돌아갔다 해서 귀정사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변천]
귀정사(歸政寺)에 대한 기록은 『고도남원의 얼』, 또는 『남원지』에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기술된 것 말고는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찰은 일찍이 삼국시대인 515년에 세워진, 오래된 사찰 중의 하나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절은 처음에 만행사(萬行寺)라고 했는데 이 절이 위치한 산 이름이 만행산인 데서 유래한다. 그러다 어느 때인가 귀정사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이 만행사에는 천하에 이름 높은 고승이 있어, 그 명성을 이 나라의 왕이 알게 되었다. 그의 설법을 들으면 앉은뱅이가 일어선다 하고, 며칠이 지나도 잠이 아니 온다 하고, 몸의 괴로움이 스스로 없어진다 하였다.
왕은 그 고승을 한번 보기가 소원인지라 하루는 백관을 거느리고 만행사까지 행궁하게 되었다. 이때 왕은 그 고승을 대하니 과연 도사답게 생겨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거기에 그 고승의 설법을 들으니 그 오묘함에 왕은 물론이요, 누구나 탄복하지 않은 이 없다. 설법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왕은 고승의 설법을 하루라도 더 듣고 싶어서 3일간을 머물러 국정을 만행사에서 살피고 돌아갔다.”
왕은 그의 설법에 깊이 감동한 나머지, “죽고 살기를 스님과 더불어 같이 한다(生之殺之 我師同之)”고 하였으니 고승에 대한 왕의 존모와 신복의 정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로부터 사찰 이름을 귀정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절이 왕의 3일간 행재소가 되니 주위의 산 이름과 지명도 따라 바뀌어, 과거의 만행산을 천황봉(天皇峰)이라 하였다.
그 밑에 좌우 여러 줄기 봉우리로 태자봉(太子峰), 남대문로(南大門路)[보절면으로 넘어가는 길], 둔병치(屯兵峙)[보절면 가는 고개]가 있고, 또 대상리(大上里)에서 산동면 소재지로 가는 중간에 당동(唐洞)과 요동(堯洞)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이는 3일간의 귀정사 왕정이 요 순 세계와 같이 살기 좋았다 하여 이런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그 후 1002년(목종 5)에 대은선사(大隱禪師)가 크게 중창하였고, 1468년(세조 14)에 낙은선사(樂隱禪師)가 중수하여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이때의 사찰 규모는, 불당이 만행산을 메웠으며, 승려는 20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의 시설로는 법당(法堂), 정루(正樓), 만월당(萬月堂), 승당(僧堂), 연화당(蓮花堂), 삼광전(三光殿), 문수전(文殊殿), 상실(上室), 명월당(明月堂) 등이 있었고, 귀정사에 딸린 부속 암자로는 남암(南庵), 대은암(大隱庵), 영당(影堂), 낙은암(樂隱庵)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폐허로 있다가 1664년(현종 5) 월표(月漂) 설제대사(雪霽大師)가 비교적 옛 모습에 가깝도록 복구하였으며, 1804년(순조 4)에 현일대사(玄一大師)가 크게 중수하였다.
이때는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대웅전, 시왕전, 산신각, 칠성각, 선당, 요사채 등 많은 불당을 세워 면모를 새롭게 하였으나, 9·28수복 이후 공비 토벌을 위한 작전상의 이유로 인해 유엔군이 소각해 버렸다. 그 후 1968년 유정동 주지의 노력으로 대웅전, 승당, 칠성각, 요사를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1985년 8월 16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된 귀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로서 1968년 대웅전, 승당, 칠성각, 요사 등을 재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단일 사찰로서는 상당한 규모와 신도를 지녔으나 전쟁 때의 피해 이후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찰의 역사와 규모 등이 주변의 지명과 전설로 남아 있어 실제 우리 생활 속에 농익어 있는 신앙 의식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