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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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湖齋 |
영어음역 | Donghojae |
영어의미역 | Donghojae Village School |
이칭/별칭 | 감성서당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금성리 477-3[감성1길 29-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찬용 |
성격 | 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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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905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금성리 477-3[감성1길 29-6]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었던 조선시대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개설]
동호재는 시문에 능한 조문형이 사재를 털어 만든 서당으로서, 그의 아호인 ‘동호(東湖)’를 칭하여 동호재라는 이름을 지었다.
[변천]
시문에 능하였던 훈장 조문형은 20세에 마을 훈장이 되어 자신이 거주하는 집에 ‘동호재’를 마련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혹독하였던 일제강점기를 거쳐 1950년까지도 존속하였으며 많은 제자와 후학들이 배출되었다.
[형태]
동호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현황]
현재 동호재는 마을의 중심 자리에 위치하였지만 지금은 철거되고 감성마을 여성 회관으로 수십 년째 활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감성마을은 1750년경에 경주김씨와 김해김씨 일가가 처음 터를 잡아 정착한 마을이다. 마을 앞쪽 황금벌판과 동북부 방향의 교룡산을 배경으로 감성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풍수지리 덕분에 예로부터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 현재에도 다수의 공직자를 배출하고 있다.
감성마을은 교육 수준이 높았고 예로부터 순창, 동계 주민들이 남원 시내로 가기 위해 반드시 들러야 했던 고장으로서 물류 집산이 원활했던 곳이다. 이런 이유로 학동 또한 많았다고 한다.
1970년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선도적으로 정착시킨 마을답게 동호재에서 초등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져 1950년대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아 동호재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