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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재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590
한자 雲谷齋-
영어음역 Ungokjae Teo
영어의미역 Ungokjae Village School Site
이칭/별칭 아실서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찬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당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 전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아곡리에 있었던 조선 전기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개설]

운곡재(雲谷齋)는 아곡리 아실마을의 지역 유지들에 의해 공동 설립되었으며,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과 한문을 가르쳤다.

[변천]

운곡재는 조선 전기에 설립되어 현대까지 운영된 오랜 전통의 촌합형 서당이다. 아실마을 지역은 통일신라 시기부터 달성서씨(達城徐氏)의 최초 정착을 시작으로 함양오씨(咸陽吳氏), 평강채씨(平康蔡氏) 등이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 학문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마을 주민들의 교육 열기가 높아 1897년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운봉군 북상면과 1914년 일제강점기에 남원군 아영면 아곡리로 재편된 행정 구역 안에서도 꾸준히 서당을 지속시킨 학문의 마을이었다.

운곡재는 이러한 아실마을의 유지들이 향촌 교육의 중요성을 조상 대대로 인식했기 때문에 훈장이었던 두산 이두현 등이 민족의식을 토대로 여러 마을의 학동들을 훌륭하게 몽학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특히 학문 수양을 격려하기 위해 마을 주민 43명이 참여하던 ‘수양전진계’는 운곡재의 인재 양성을 지원하는 모범적 운영을 통해 운곡재 고유의 주경 야독 학풍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교육 방식에 의해 운곡재에서는 일제강점기에도 민족 지향적인 항일 애국 독립 사상을 고취시키는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운곡재의 운영이 정지된 광복 후에도 많은 아실마을 청년들이 남원 지역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운곡재는 운영 당시 서당답과 장학답이 있어 가을 운동회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운동장까지도 마련하는 등 지역 공동체의 성숙함과 단합을 잘 이루어낸 서당의 기틀을 간직했다. 또한 아영초등학교 설립의 산파 역할을 한 서당으로도 유명하다.

[현황]

운곡재는 1941년 서재의 노후화로 철거되었으며 현재 터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운곡재는 당시 남원도호부 운봉현 아실마을의 향촌 사회 교육의 요람 역할을 한 서당이었다. 조선 전기 운곡재 설립 이후부터 추구하여 온 학문 중시 학풍의 영향과 훈장인 두산 이두현 등과 마을 유지의 노력으로 운곡재의 진지한 학문 수양을 지원하던 ‘수양전진계’를 조직할 정도였다.

운곡재는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전국적으로도 모범적인 서당 운영 편제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서당의 학동 역시 민족의식과 일제강점기의 항일 독립 운동 사상을 고취한 지역 인재로 성장하는 등 한국 서당 교육의 모범이 되었다.

특히 ‘수양전진계’는 현재까지도 그 자손들이 꾸준히 계승하여 마을의 단합과 아영면 일대 향촌의 교육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운곡재는 설립 운영 당시 아영면 아곡리 아실마을 일대를 학문과 문화 예술의 현장으로 바꾸어 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10.21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한자항목명 雲谷齎 터 ->한자항목명 雲谷齋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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