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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605
한자 㝡樂堂
영어음역 Choerakdang
영어의미역 Choerakdang Village School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영동리 467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찬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9년 7월 9일연표보기 - 최락당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최락당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서당
양식 홑처마 양식의 우진각 지붕
건립시기/일시 1600년연표보기
정면칸수 4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영동리 467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영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에 설립된 초·중등 교육 기관.

[변천]

최락당은 1600년(선조 33) 경주김씨 수은공 김충한의 5대손인 별제공(別提公) 김익기가 정자를 지어 처음으로 강의를 하였고, 그의 아들 김유가 중수하여 야은당(野隱堂), 혹은 쌍백당(雙栢堂)이라는 당호를 지어 거처한 곳이다.

김익기의 증손인 김선(金宣)선조 때 성균관장의를 사임하고 향리에 낙향하여 집을 개수하여 최락당이라 개칭하면서 초·중등 교육의 장으로서, 향약계의 모임 장소로도 쓰였다.

[형태]

최락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에 우진각지붕의 집이다. 현존 건물은 1600년에 처음 건립된 이래 18세기 말에 크게 중수되었으며, 공간 건물 구성 역시 단순하게 정리된 가옥 구조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 대청 내부에는 최락당에서 묵고 간 많은 선비들의 한시 현판 35개가 보존되어 있으며, 최락당 현판 역시 김선의 손자가 썼다. 천장에는 김선의 손자 김습이 16살 때 쓴 ‘최락당’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는데, 한 글자가 1칸씩을 차지할 정도로 크다.

[현황]

최락당의 향촌 교육의 결과로 400년 전부터 배출된 9성(姓) 14가(家)의 유현(儒賢) 100여 명의 후손들이 조직한 향약 문회계(文會契)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100여 명의 후손들이 매년 음력 4월 3일 선조 추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최락당 건물 역시 1999년 7월 9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9호로 지정되어 경주김씨 취락당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또한 후원에 있는 400여 년 된 은행나무가 전해지고 있는데, 은행나무는 김선이 성균관 앞의 은행나무 가지를 꺾어다 심은 것이라 한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최락당은 400여 년 동안 향촌 사회의 초·중등 교육을 담당했을 정도로 지역 유지 및 향촌 선비들이 사랑했던 다목적 문화 공간이었다. 봄과 가을에 선현 추모 행사를 진행하면서 유교와 유도를 논하고 선대로부터 전수된 향약을 실천하는 등 보기 드문 현존의 향촌 사회 교육 기관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2.28 [형태] 오타 수정 <변경 전>16살 때 쓴 ‘취락당’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는데, <변경 후>16살 때 쓴 ‘최락당’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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