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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재 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613
한자 學山齋-
영어음역 Haksanjae Teo
영어의미역 Haksanjae Village School Site
이칭/별칭 초당서당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진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찬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서당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1921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진기리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진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개설]

학산재(學山齋)는 임진왜란 이후 남원에 정착하게 된 진주소씨(晉州蘇氏) 가문의 소종혁에 의해 설립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변천]

1921년에 최초로 건립되었고 1936년까지 운영된 초당(草堂) 건물의 서당이었다. 초당과 서당답이 10두락 있었다고 하며, 학산재가 폐지될 때까지 서당계가 운영되어 장학답에 의해 많은 장학생이 배출되었다.

[의의와 평가]

학산재는 소종혁과 학식이 높았던 그의 아들 소재준이 2대에 걸쳐 훈장직을 맡아 지역 사회의 초등 교육을 담당하였다. 특히 학산재 설립 이전에도 마을의 유명한 독선생이었던 소좌준이 구한말부터 중국을 왕래하면서 한학 연구를 위해 많은 문집 및 서적을 수집해 서당 설립의 기초를 닦았다.

서당 설립 이후에도 많은 독선생들이 시회(詩會) 개최를 통해 학문 매진의 중요성을 후학들에게 인지시키면서 보절면 진기리 일대를 학문과 문화 예술의 현장으로 바꾸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10.24 서당 설립 이후에도 많은 독선생들이 시회(時會) 개최를 통해 서당 설립 이후에도 많은 독선생들이 시회(時會) 개최를 통해 ->서당 설립 이후에도 많은 독선생들이 시회(詩會) 개최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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