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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619
한자 姜周澤
영어음역 Kang Jutaek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유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성별
본관 진주
대표관직 증동몽교관(贈童蒙敎官)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강민첨(姜民瞻)의 23세손이다. 부인은 경주정씨(慶州鄭氏) 노송정(老松亭) 정지년(鄭知年)의 후예이다.

[활동사항]

강주택은 뛰어난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타고난 천성이 효심이 깊어서 부모에게 항상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여 드리고 그 뜻을 어긴 적이 없었다. 초상과 장사 및 제사에 관한 예절을 한결같이 가례(家禮)에 따라 행하였다.

친상(親喪)을 당하자 3년 동안 여묘(廬墓) 살이를 하였으며 국상(國喪)에는 소복을 입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에 북쪽을 향하여 사배(四拜)를 하였다. 이러한 그의 행적이 조정에 알려져, 그에게 동몽교관(童蒙敎官)의 증직(贈職)과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상훈과 추모]

강주택은 1892년(고종 29)에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贈職)되었으며,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효열부(孝烈婦)였던 그의 처 경주정씨도 정부인(貞夫人)에 봉해지고 정려가 내려졌다.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흑송리 대척동의 북쪽 입구에는 이들 부부의 정려비가 세워져 있는데, 네 기둥의 석정(石旌) 안에 비(碑)가 있는 형태이다. 비문은 예조판서 원임 규장각제학(原任奎章閣提學) 안동(安東) 김종한(金宗漢)이 지었으며, 외부원외랑(外部員外郞) 한산(韓山) 이긍복(李肯馥)이 글씨를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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