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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601654
한자 三宜堂金氏
영어음역 Samuidang Kimssi
영어의미역 Lady Samuidang Kim
이칭/별칭 삼의당,김삼의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서정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여류 문인
출신지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성별
생년 1769년(영조 45) 10월 13일연표보기
몰년 1823년(순조 23)연표보기
본관 김해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여류 문인.

[개설]

남원에서 태어나 살다가 진안으로 이주한 조선 후기의 여류 문인이다. 삼의당 김씨처럼 여염집의 평범한 부인으로 문학 작품을 창작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삼의당 김씨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같은 사대부가의 여인도 아니고, 황진이나 이매창 같은 기녀도 아니었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여염집 여인으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전원의 풍치를 담아 260여 편의 한시와 산문을 남겼다.

[가계]

본관은 김해. 당호는 삼의당(三宜堂)이다. 연산군 때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김인혁(金仁赫)이다. 나이 18세에 같은 마을에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난 담락당(湛樂堂) 하립(河 氵+昱)과 결혼했다. 하립은 진주하씨로 세종 때 영의정 하연(河演)의 12대손이다.

[활동사항]

삼의당 김씨는 몰락한 사족(士族)의 후예로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한글로 된 『소학』을 읽고 문자를 배워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대충 섭렵했다’고 한다. 스스로 글공부에 노력하여 혼인하기 전에 규방의 법도를 익혀 부덕을 고루 갖추고 문학에도 상당한 재능과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1786년(정조 10) 18세에 하립과 혼인하였다. 이들 부부는 나이도 같고 가문이나 글재주가 서로 비슷하여 천정배필로 불렸다. 본가와 시가가 모두 몰락한 양반 가문이었기 때문에 심의당 김씨는 남편을 과거에 급제시키기는 것을 평생 소원으로 삼았다.

그는 남편에게 산사에 들어가 공부하고 과거 준비를 위해 상경하도록 권고하였다. 가세가 궁핍하여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머리털을 자르기도 하고 비녀를 팔기까지 하였으나 남편은 급제하지 못하였다. 남편이 서울에서 돌아오자 1801년(순조 1) 32세에 생활고를 면하기 위해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로 이주하여 죽을 때까지 그 곳에서 살았다.

[저술 및 작품]

삼의당 김씨가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지난 1930년에 광주에서 『삼의당고(三宜堂稿)』가 출간되었다.

[묘소]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에 남편과 함께 쌍봉장으로 묻혔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남원시 산곡동에 있는 교룡산성에 ‘김삼의당시비(金三宜堂詩碑)’가 세워졌고,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마이산 탑영지(塔影池)에 ‘담락당하립삼의당김씨부부시비(湛樂堂河砬三宜堂金氏夫婦詩碑)’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12.09 [가계] 수정 <변경 전> 담락당(湛樂堂) 하립(河砬)과 결혼했다. <변경 후> 담락당(湛樂堂) 하립(하립(河氵+昱)과 결혼했다.
이용자 의견
가* 하립의 립은 수립일가 합하여 만들어진 자입니다.
  • 답변
  • 디지털남원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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