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679 |
---|---|
한자 | 梁天龍 |
영어음역 | Yang Cheonryong |
이칭/별칭 | 운암(雲庵)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경석 |
[정의]
고려 후기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충신이자 효자.
[활동사항]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있으면서 대방군(帶方君)에 봉(封)해졌다.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 이성계가 세 번이나 불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평소 효행이 지극하였던 양천룡은 부친이 세상을 하직하자 묘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애통해하며 지극한 효심으로 시묘(侍墓)하였다. 연이어 모친의 상을 당하자 묘막에서 6년을 지냈다.
[상훈과 추모]
1441년(세종 23) 충효의 정문(旌門)이 내려지고, 편액 ‘대방군 문하시중 남원양공천룡 충효지려(帶方君 門下侍中 南原梁公天龍 忠孝之閭)’는 예조판서 민의생(閔義生)이 썼다.
당초 충효문은 목조 기와 다포집 2평으로 세워져 있던 것을 1955년 도로 개설 공사로 철거하게 되자, 남양양씨 문중에서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명티리 가사목으로 옮겨 관리하다가 1989년 다시 남원으로 옮겼다. 현재 양천룡의 정려는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송상리 문치고개 위 남원-송동 간 길가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