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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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浚慶 |
영어음역 | Yi Jungyeong |
이칭/별칭 | 원길,동고,남당,홍연거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경석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원길(原吉), 호는 동고(東皐)·남당(南堂)·홍연거사(紅蓮居士). 아버지는 홍문관부수찬 이수정(李守貞)이다.
[활동사항]
황효헌과 이연경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 갑자사화 때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1522년(중종 17)에 생원, 1531년(중종 26)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부수찬·사경으로서 기묘사화 때 피죄인의 무죄를 논했다고 김안로의 미움을 사서 한때 파직되었다가 직제학·부제학이 되었다.
1543년(중종 38)에 문신정시에 장원, 한성부우윤·대사성·평안도관찰사·병조판서·한성부판윤·대사헌을 역임했다. 병조판서 때 이기의 뇌물청탁 구관을 거절, 윤임 일파로 몰려 한때 보은에 유배되었다.
그뒤 지중추부사와 함경도순찰사를 거쳐서 1555년(명종 10) 전라도순찰사로 호남 지방에 침입한 왜구을 격퇴한 뒤, 우찬성과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565년(명종 20)에 영의정에 올랐다. 1567년 명종이 승하하자 선조를 영립, 원상으로 국정을 총괄했으나 신진 사류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한편 기묘사화로 죄를 받은 조광조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을사사화로 죄를 받은 모든 사람을 신원하였다. 죽기 전에, 붕당이 있을 것이니 이를 타파하여야 한다는 유소를 올려 이이와 유성룡 등의 신진 사류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동고유고(東皐遺稿)』와 『조선풍속(朝鮮風俗)』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에 있으며, 경기도기념물 제96호로 지정되어 있다. 봉분을 중심으로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갖추어져 있고 그 앞에는 장대석으로 단을 만들었다. 단 앞 중앙에는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우는 장명등이 있고, 좌우로 묘가 있음을 알리는 표시인 망주석과 무덤을 수호하기 위해서 세우는 문인석이 있다.
[상훈과 추모]
선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1647년(인조 25)에 사림들에 의해 청안의 구계서원 등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