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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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熿 |
영어음역 | Jeong Hwang |
이칭/별칭 | 계회,유헌,충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송화섭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계회(季晦), 호는 유헌(遊軒), 시호는 충간(忠簡). 아버지는 필산감역(匹山監役) 정세명(丁世名)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김수형(金壽亨)의 딸이다.
[활동사항]
정황은 1536년(중종 31) 친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거쳐 지평·병조정랑·형조정랑 등을 지냈다. 1544년 정랑으로 있을 때 6품 미만의 자급(資級)으로 정5품직에 임명되었다는 이유에서 논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545년(명종 1)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인종의 장사(葬事)를 갈장(渴葬)으로 치르려고 하자 모든 관원들이 기세에 눌려 침묵하고 있었는데, 정황은 이를 극력 반대하여 의례대로 장사를 거행하게 하였다.
1546년(명종 2) 검상을 거쳐 사인으로 있을 때 을사사화가 일어나 소윤 윤원형(尹元衡) 등 외척이 권세를 잡자, 그 일파인 이기(李芑)의 모함으로 파직당해 남원으로 내려왔다. 1547년(명종 3)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곤양에 유배되고 이듬해 거제로 옮겨졌다가 생을 마감했다.
[학문과 사상]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천품이 강직하고 항상 효제충신(孝悌忠信)으로 입신의 근본을 삼았다.
[저술 및 작품]
『유헌집』4권 3책과 『부훤록(負暄錄)』·『장행통고(壯行通考)』 각 10권이 있다.
[상훈과 추모]
숙종 때 이조판서와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에 추증되었고, 충간(忠簡)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전라북도 남원시 영천서원(寧川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