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2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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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山集 |
영어음역 | Nongsanjip |
영어의미역 | Collected Works of Nongsan |
이칭/별칭 | 농산선생문집(農山先生文集)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강욱 |
[정의]
조선 후기 남원에서 활동한 신득구의 시문집.
[편찬/발간경위]
신득구(申得求)[1850~1900]는 원래 고흥(高興)에서 부친인 병호(屛湖) 신청모(申淸模)[1815~1873]와 어머니 여산송씨(礪山宋氏) 사이에서 3남 4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러나 부친이 남원으로 이주한 뒤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생활을 함에 따라 신득구도 역시 남원에서 기거하였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득구의 자는 익재(益哉)이고, 호는 농산(農山)이며,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농산집(農山集)』에는 서문과 발문이 없는 채로 간행이 되어서 정확한 간행 년대와 경위를 알 수 없으나, 20세기 초엽에 족인과 향중 문인들에 의하여 전라북도 남원에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지적 상황]
12권 5책의 목활자본이다.
[형태]
12권 5책의 목활자본으로 세로가 31.8㎝이고 가로가 20.3㎝이며, 반곽은 세로가 23.7㎝이고 가로가 16.6㎝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에 유계(有界)로 10행 22자이고, 판심은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이다.
[구성/내용]
권1에 시(詩)가 91편이 수록되어 있고, 권2~4에 서(書)가 65편, 권5에 잡저(雜著)가 14편, 권6에 서(序) 8편, 권7에 기(記) 41편, 권8에는 제(題)·발(跋)·명(銘)·잠(箴)·사(辭)·혼서(婚書)·상량문(上樑文)·고축(告祝)·제문(祭文)·애사(哀詞) 등이 실려 있으며, 권9에는 묘갈명(墓碣銘)·묘지명(墓誌銘)·묘표(墓表)가, 권10~11은 모두가 행장(行狀)이고, 권12는 가장(家狀)·유사(遺事)·전(傳) 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서(書)에서는 임헌회와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학자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학문을 논하였으며, 아울러 집정대신이었던 계전(桂田) 신응조(申應朝)[1804~1899]와 입재(立齋) 송근수(宋近洙)[1818~1902]에게 시정의 득실에 대한 자신의 시국관을 피력한 서신문답의 왕래가 보이기도 한다.
또한 잡저(雜著)에서 보듯이 「경례사문형기형기신리후설(經禮史文形氣形氣神理後說)」·「자성편(自省編)」·「벽이단문(闢異端門)」·「부인명정신주설(婦人銘旌神主說)」·「물구오상설(物具五常說)」·「오성각거일언도(五聖各擧一言圖)」·「중용도(中庸圖)」·「맹자호연지도(孟子浩然之圖)」·「사물잠도(四勿箴圖)」 등은 실로 신득구의 성리학적인 깊은 관심과 학풍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저술이기도 하다.
[의의와 평가]
『농산집(農山集)』은 권·책의 규모와 함께, 실린 글들의 다양한 문체로도 20세기 남원지역에서 간행된 향판(鄕版)의 대표가 되기에 손색이 없는 문집이다.
『농산집(農山集)』을 통해서 조선 말기에 대처한 당시 지식인의 시국관과 학문적인 주요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저자의 학풍과 교류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 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