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2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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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孝孫 |
영어음역 | Yun Hyoson |
이칭/별칭 | 유경,추계,문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손앵화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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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남원시 |
성별 | 남 |
생년 | 1431년 |
몰년 | 1503년 |
본관 | 남원윤씨 |
대표관직 | 경상도감사|대사헌|형조판서|숭정대부 |
[정의]
조선 전기 남원 출신의 문신.
[개설]
추계(楸溪) 윤효손(尹孝孫)[1431~1503]은 성종 연간에 주로 활약했던 문신이다. 학문에 출중하였으며, 지조가 단아하고 방정하였다. 성종 때 벼슬이 참찬에 이르렀으며, 기사(耆社)에 들었다. 남원시 주생면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났다고 전한다.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유경(有慶), 호는 추계(楸溪). 문숙공(文肅公) 윤관(尹瓘)의 후손이다. 부친은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 윤처관(尹處寬)이며, 모친은 박원형(朴元亨)의 딸이다. 이조참의를 역임한 윤지형(尹止衡)이 아들이다.
[활동사항]
1457년 중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우헌납과 예조정랑을 거쳐 의정부사인이 되었다가, 양친의 병환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1469년 훈련원부정 당시 시정의 폐단을 간하다가 도리어 수금(囚禁)을 당하였으나 곧 석방되었다. 1472년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로 전임되어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오례의주(五禮儀註)』를 수찬하였다.
1473년 전주부윤에 제수되어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포상할 것을 청하므로 성종이 당표리(唐表裏)를 하사하였다. 이어서 1477년 형조참판을 거쳐, 1478년경상도감사를 역임하고 대사헌이 되었다. 1490년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과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등의 책과 조맹부(趙孟頫)의 족자 1첩을 가지고 왔다. 문묘의 찬탁(饌卓)을 창설하고, 세자의 관(冠)과 도포의 제도를 정하였다. 1494년 『성종실록(成宗實錄)』의 수찬에 참여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어세겸(魚世謙)·이극돈(李克墩)·유순(柳珣)·김전(金栓) 등과 함께 수사관(修史官)으로서 문제가 된 김일손(金馹孫)의 사초를 보고도 보고하지 않은 죄로 파면되었다. 1501년 좌참찬을 역임하였고, 뒤에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다.
[저술 및 작품]
석판본 『추계선생유집(湫溪先生遺集)』 2권 1책이 전한다.
[묘소]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이평리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남원의 방산서원(方山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만오(晩悟) 오명후(吳命厚)는 윤효손을 방산서원에 사액해 줄 것을 청하는 상소에서 윤효손을 안회(顔回)와 증자(曾子)에 견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