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30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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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原開嶺庵址磨崖佛像群 |
이칭/별칭 | 정령치 마애불상군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정령치로 1523[덕동리 산 215] |
시대 | 고려 |
집필자 | 박영민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2년 1월 15일 -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보물 제112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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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보물 재지정 |
보수|복원 시기/일시 | 2013년 4월부터 8월 - 3D스캔 및 구조안전진단 |
현 소장처 |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정령치로 1523[덕동리 산 215] |
원 소재지 |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정령치로 1523[덕동리 산 215] |
출토|발견지 |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정령치로 1523[덕동리 산 215] |
성격 | 마애 |
재질 | 석조 |
크기(높이) | 4.2m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남원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지리산의 서쪽 고리봉과 정령치 사이의 암반에 새겨진 고려 시대의 불상군.
[개설]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은 지리적으로는 고리봉의 남쪽에 있으며, 정령치에서 북동쪽의 고리봉 방향으로 약 500m 거리에 있다. 마애불상군은 ‘정령치 마애불상군(鄭嶺峙 磨崖佛像群)’으로도 알려져 있다. ‘개령암(開嶺庵)’은 구례 천은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인 『호좌남원부지리산감로사사적(湖佐南原府智異山甘露寺事蹟)』에 명칭만 언급되어 있을 뿐, 그 위치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이 마애불 주변이 개령암의 터라는 근거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마애불 주변에서 기와편, 자기편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던 것으로 보아 절터였던 것은 알 수 있다. 지금은 주변에서 절터와 관련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마애불상군은 총 12구이며, 주된 좌향은 남향이다. 마애불상군은 최초 발견 당시 총 9구의 불상으로 확인되었지만, 이후의 조사를 통해 3구가 추가 되었다. 암벽면에는 마애불과 함께 명문도 새겨져 있다. 1992년 1월 15일 보물 제112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마애불상군은 2구의 대형 불상을 중심으로 크게 네 개 군으로 나뉘어 새겨져 있다. 불상들은 대체로 자연 암반면을 그대로 활용하여 새겨져 있어 일부는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고, 심하게 훼손된 것도 있다. 불상들은 얕은 양각과 선각을 병행하여 새겼다.
중앙의 불상 1의 높이는 약 4m이다. 얕은 부조이며, 대좌와 광배는 새기지 않았다. 두부는 신체에 비해서 큰 편이다. 머리는 소발이며 낮고 작은 육계가 있다. 얼굴은 긴 타원형인데, 이마에 백호가 도드라지게 새겨졌고 눈, 코, 입이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귀는 넓게 펼쳐져 있고, 목에 삼도가 있다. 대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으로 착용하였고, 다리는 결가부좌하였는데 양 발이 드러나 있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복부 앞에 두었다. 이 불상의 좌측 아래에는 “毘盧遮那佛(비로자나불)”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중앙의 불상 2는 입상이다. 불상1과 같이 두부가 큰 편이다. 머리는 소발이며 둥근 육계가 솟아 있다. 얼굴은 약간 긴 타원형이며, 이마가 짧고 백호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이목구비는 큼직하게 새겼고, 목에 삼도가 있다. 대의는 양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으로 착용하였는데, 층단식의 옷주름이 넓게 새겨져 있고 하반신에 ‘U’자 형의 주름이 흘러내리고 있다. 양 손을 모아 가슴 앞에 두고 대의자락으로 가리고 있는 ‘공수(拱手)’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불상의 머리 옆에는 “世田(세전)”, “明月(?)(명월)智佛(지불)”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특히, 이 명문 이외에도 불상군 주변에는 다수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앞서 언급한 “毘盧遮那佛”, “世田”, “明月智佛” 이외에도, 암반 우측에서 “天普十王世人而□□師士(천보십왕세인이□□사사)”, “十佛□滅陀羅尼/路浐他惡普曾伽惡普/□□□阿明伽曰(?)和帝此/是□□□白阿衍/跢他伽跢/□褆□訶(십불□멸타라니/로산타악보증가악보/□□□아명가왈(?)화제차/시□□□백아연/다타가다/□제□가)” 등의 명문이 판독된다.
중앙의 대형 불상 2구 좌, 우, 아래에는 9구의 크고 작은 불상들이 새겨져 있다. 불상 1의 우측과 아래에는 각각 3구씩의 상이 있고, 불상 2의 좌측 아래에는 1구의 좌상, 좌측 암반 위쪽에 2구의 상이 새겨져 있다. 이 불상들 중 1구만 입상으로 보이며, 나머지는 좌상이다. 수인은 명확하게 보이지 않으나, 대부분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고 왼손을 복부에 두고 있다. 또한 불상들은 3구를 제외하고 모두 광배를 지니고 있는데, 광배가 있는 불상 중 1구는 두광만 지니고 있다. 불상의 두광은 대체로 끝부분이 뾰족한 보주형이다. 대좌는 대부분 생략되었지만, 불상 2 좌측 아래의 좌상은 단순한 연판문을 새긴 대좌를 지니고 있다.
[특징]
이 마애불상군은 다수의 마애불이 독존, 혹은 삼존으로 새겨져 있는 것과는 달리 3구 이상의 군상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마애불상군의 예로,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 화순 운주사 불상군 및 마애불상군,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 등이 있다. 마애불상군에 새겨진 존상은 대부분이 불상인데, 이와 같은 점은 화순 운주사 마애불상군,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 등과 유사하다. 특히 이목구비가 큼직한 얼굴, 비례가 맞지 않는 신체 표현, 다소 추상적으로 새겨진 손과 발의 형태 등은 화순 운주사 마애불상군의 표현과 유사하다.
입상인 불상 2와 같이 양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대의자락으로 가린 손모양은 전북 정읍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임실 오수리 석불입상, 전남 화순 운주사 불상군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수인을 취하고 있는 입상의 불상은 특히 전라도 지역에 많다. 또한 주존으로 판단되는 불상 1, 2의 좌측에는 각각 존명으로 생각되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중 불상 1은 ‘비로자나불’로 판독되고 있어, 비로자나불이면서 지권인을 취하지 않은 예로 주목되기도 하였다. 또한 명문 중 “天普(천보)”로 판독되는 글자는 중국 오월(吳越, 908~923)의 연호로 판단되기도 하는데, 해당 연대는 917년이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불상의 제작시기는 후백제 혹은 고려 전기이다. 그러나 양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이 불상군은 고려 후기 무렵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명문을 근거로 제작연대를 파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의의와 평가]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은 산정부에 가까운 절벽면을 배경으로 군상을 이루는 불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의 얼굴, 옷주름 표현, 수인 등은 고려 시대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주존을 이루는 불상 옆에 존명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고려 시대 불상 양식 연구뿐만 아니라 도상 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