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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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集 |
영어음역 | Gim Jip |
이칭/별칭 | 사강(士剛),신독재(愼獨齋),문경(文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사면 임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고수연 |
[정의]
조선 중기 논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아버지는 사계 김장생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첨지중추부사 조대건(曺大乾)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집은 1591년(선조 24) 진사로 합격하였다. 그러나 사장학(詞章學)을 좋아하지 않아 경전연구와 수양에 전심을 다하였으며, 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1610년(광해군 2) 헌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은퇴하여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인 충청남도 논산에 은거하게 된다. 인조반정 뒤 다시 등용되어 부여현감·임피현령·지평·집의·공조참의 등을 두루 지냈으나 김자점(金自點) 등 공서파(功西派)가 집권하자 관직을 버리고 다시 낙향하였다.
효종 즉위하자 김상헌의 천거로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효종과 함께 북벌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각한 김자점이 북벌계획을 청에 밀고하여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사임을 하고 낙향하였지만, 다시 대사헌과 좌찬성에 임명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경전연구와 수양에 힘쓰고 도를 즐기며 아버지 김장생의 예학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학문과 사상]
김집은 어려서부터 송상현(宋象賢)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며, 김장생의 계구근독(戒懼謹獨)의 공부를 계승하고, 특히 예학에 힘썼다. 예(禮)라는 것은 인욕(人欲)을 억제하고 천리를 보존하는 법칙이라고 하였다. 성리설에서도 김장생의 설을 계승하였는데,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고수하였다.
또한 정홍명(鄭弘溟)과 태극설을 논했으며, 윤선거(尹宣擧) 등과 상례를 논하기도 하였다. 아버지 김장생의 학통을 이은 김집의 학문은 다시 송시열에게 전해져 기호학파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김집의 문하에서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송시열, 윤선거, 유계, 이유태, 윤문거 등을 꼽을 수 있다.
[저술 및 작품]
아버지인 사계 김장생이 찬한 『의례문해(疑禮問解)』 등을 교정하고 편집하여 『의례문해속(疑禮問解續)』을 편찬하였으며, 저서로는 『신독재유고』가 전해지고 있다.
[묘소]
묘소는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으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69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1883년(고종 20)에는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에 제향되었으며, 효종의 사당에 위패를 함께 모시고 제사지냈다. 연산 돈암서원(遯巖書院), 임피 봉암서원(鳳巖書院), 옥천 창주서원(滄州書院), 봉산 문정서원(文井書院), 부여 부산서원(浮山書院), 광주 월봉서원(月峯書院) 등에 제향 되었으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