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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복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644
한자 姜復中
영어음역 Gang Bokjung
이칭/별칭 중화재(中和齋),재기(載起),청계망사((淸溪妄士),청계조옹(淸溪釣翁)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연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문인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리
성별
생년 1563년연표보기
몰년 1639년연표보기
본관 진주
대표관직 참봉

[정의]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유생이자 문인.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중화재(中和齋)·재기(載起)·청계망사(淸溪妄士)·청계조옹(淸溪釣翁). 증조할아버지는 강응정(姜應貞)이고, 할아버지는 광흥창봉사 강령(姜齡)이다.

[활동사항]

강복중은 충청도 은진(현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리)에서 태어나 12세에 가화(家禍)로 인하여 이산현 화곡리(지금 노성면 화곡리)로 이사하였다. 1602년(선조 35) 이사 온 지 11년 만에 다시 은진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벼슬은 참봉에 그치고 일생을 시골에 묻혀 지냈으면서도 효행으로 이름이 있었고, 시가 문학 방면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강복중의 묘소는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리에 있다.

[저술 및 작품]

강복중은 나라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시조에 직접적으로 나타냈는데, 이것이 61세 때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지은 「계해반정가(癸亥反正歌)」6수로서, 거사를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일생 동안 선산(先山)의 산변(山變)으로 송사에 시달렸는데, 72세 때 이안눌(李安訥)의 도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가사(歌詞) 「선산회복가(先山恢復歌)」에 당시의 감격이 잘 나타나 있다.

병자호란 때에는 가사 「위군위친통곡가(爲君爲親痛哭歌)」를 지어 직접 싸우지 못하는 원통한 마음을 표현했다. 노년에는 처사로서의 삶의 아픔과 한, 시국에 대한 불만을 담은 뛰어난 시조 「수월정청흥가(水月亭淸興歌)」12수를 창작하였다. 「청계공가사(淸溪公歌詞)」와 「수월정청흥가첩」은 1885년에 강내호(姜來鎬)가 편찬한 『중화재선생실기(中和齋先生實紀)』중 「청계유사부(淸溪遺事附)」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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