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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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珠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관휴 |
개설 시기/일시 | 1912년 - 영평군 군내면 만교리로 행정구역 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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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영평군 군내면 만교리에서 포천군 영중면 금교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2003년 10월 19일 - 포천군 영중면 금교리에서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로 개편 |
법정리 | 금주리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 |
성격 | 법정리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명칭 유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영평현에서 동쪽으로 20리에 있다.”고 나와 있다. 금주리 동쪽에 위치한 금주산[568m]은 일제 강점기에 영중 광산이라고 하는 금광이 있어 반세기 동안 금을 채굴하였다. 지금은 금주 광산이란 상호를 내걸고 채광을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광산을 개발하면서 마을 이름을 금주리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12년 행정 구역은 영평군 군내면 만교리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군내면 수일리 전역과 거사동 일부, 포천군 내북면 만세교리 일부를 병합하고 영중면에 편입하였다. 2003년 10월 19일 포천군이 도농복합시로 승격하면서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금주리는 금주산의 북서쪽 일부를 포함하고 있으며 계곡부인 중앙부에 금주 저수지가 있다. 금주산의 여러 지류로부터 금주 저수지와 연결된 수일천이 금주리의 중앙부를 지나 서쪽 경계를 나타내는 명덕천으로 흐른다.
[현황]
금주리에 위치한 자연 마을로 갈우개·궁들[궁현]·닥밭[저전]·당재[산제당]·동광·만세교[만세교리]·붕현·사기점·샛골[상동]·샛말·안터·중간말[중촌]·태봉[금봉] 등이 있다. 문화 유적은 두 개 있는데, 그중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 알려진 금주리 유적은 행정 구역상 신북면 금주 4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닭밭이라 불리며, 언덕을 중심으로 논과 인삼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이곳에서 몸돌과 격지가 나왔다. 또 다른 하나는 만세교에서 동쪽으로 약 700m 지점에 솟아 있는 태봉 정상의 금주리 태봉 터이다. 전언에 의하면 조선의 제12대 임금인 인종의 딸로 태어난 공주의 태를 봉했다고 하나, 이를 증명할 태실 표석 및 문헌이 없어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일제 강점기에 태항은 이미 도굴되었고, 그 후 옹석과 개석이 정상에 방치되어 있었으나 최근에 군 기지가 개설되면서 태실의 석물마저 행방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