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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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伯周墓-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포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익성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43년 - 오백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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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시기/일시 | 1719년 - 오백주 묘 조성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719년 - 오백주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721년 - 오백주 묘비 건립 |
현 소재지 | 오백주 묘 및 묘비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포천동 |
성격 | 묘|묘비 |
양식 | 원형 단분 합장묘|옥개 방부형[묘비] |
관련 인물 | 오백주(吳伯周)[1643~1719]|정부인 단양 우씨(丹陽禹氏) |
[정의]
경기도 포천시 포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오백주 부부의 묘와 묘비.
[개설]
오백주(吳伯周)[1643~1719]는 본관이 보성(寶城)이며, 자는 국경(國卿)이다. 23세에 무과에 합격하고 어영군교(御營軍校)에 보임되었다. 뛰어난 무예로 왕의 사랑을 받아 절충(折衝)·첨지(僉知) 등을 거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개천 군수(价川郡守)·노강 첨사(老江僉使) 등을 역임하였고, 마지막에 자헌대부(資憲大夫)[정2품]에 올랐다. 아버지의 병환 때 축석령에 들어가 생인삼과 석밀을 구해 병을 낫게 한 효행이 알려져 1723년에 효자 정려를 내렸다. 부인 단양 우씨(丹陽禹氏)는 우신달(禹信達)의 딸이다.
[위치]
의정부에서 포천 방면 국도 43호선을 따라 대진 대학교 진입로를 지나서 약 4㎞를 더 가다가 전곡과 포천 의료원 방면 이정표에 이른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약 600m 진행하면 왼쪽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나오고, 이 길을 따라 약 100m를 들어가면 오른편 야산 능선에 오백주 묘 및 묘비가 나타난다.
[형태]
원형 단분 합장묘로 좁고 가파른 능선에 봉분만 자리한다. 상석과 망주석 1쌍, 묘비 등은 구릉에서 흘러내린 평지에 배치하였다. 봉분의 좌향(坐向)은 축좌미향(丑坐未向)[북북동을 등지고 남남서를 바라보는 방향]이다. 묘는 1719년에 조성되었다.
[금석문]
묘비의 형태는 옥개 방부형(屋蓋方趺形)이다. 비문은 이숙(李淑)이 글을 짓고 아울러 해서체(楷書體)로 썼다. 묘비는 앞면에 새겨진 ‘상지 원년 신축 립(上之元年辛丑立)’이란 명문으로 경종 원년 신축년[1721]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비신의 높이는 123㎝, 너비 58㎝, 두께 21.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