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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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永元先生功績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117-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진호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892년 - 조영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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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8년 - 조영원 독립 유공자 대통령 표창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974년 - 조영원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986년 - 조영원 선생 공적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6년 04월 09일 - 조영원 선생 공적비 포천시 향토 유적 제24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조영원 선생 공적비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117-2 |
성격 | 비 |
양식 | 무궁화 대좌 위에 옥개석을 얹은 비석 |
관련 인물 | 조영원(趙永元)[1892~1974] |
재질 | 화강암 |
관리자 | 박치문 |
문화재 지정 번호 | 포천시 향토 유적 제24호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에 있는 1982년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 조영원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조영원(趙永元)[1892~1974]은 호는 각산(覺山)이고,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유신 학교를 졸업한 뒤 1920년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 임시 정부 의정원 의원, 임정 국무원 비서장 서리 등을 지냈고, 1926년 촉성회 대표로 만주에 파견되어 김좌진 장군이 영도하던 신민부(新民府)의 군사 위원으로 활약하면서 해림 신창 학교를 창설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31년 한국 독립군 총사령부 총참모 등으로 활약 중에 1933년 만주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사형수로 복역하다가 5년간 집행 유예로 본국에 압송되었다. 1968년 독립 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건립 경위]
조영원 선생 공적비(趙永元先生功績碑)는 1982년 포천 유지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위치]
조영원 선생 공적비는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117-2번지에 위치한다.
[형태]
옥개석(屋蓋石)과 무궁화를 새긴 비좌(碑座)를 갖춘 비석으로 정서향을 바라보고 있다.
[금석문]
비석의 전면에 ‘독립지사 각산 조영원 선생 공적비’라고 세로 1행으로 쓰여 있다. 비문은 조건행이 쓰고, 이명우가 세웠다.
[현황]
1986년 4월 9일 포천시 향토 유적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박치문이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영원 선생 공적비는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각산 조영원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마음으로 포천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세운 비석이다. 최근에도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