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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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집필자 | 장필기 |
본관 | 경주 이씨 관적지 - 경상북도 경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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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주 이씨 입향지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직두리 |
세거|집성지 | 경주 이씨 세거지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직두리 |
세거|집성지 | 경주 이씨 집성지 -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 |
세거|집성지 | 경주 이씨 집성지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마산리 |
서원 | 화산서원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
비 | 이항복 신도비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
성씨 시조 | 이알평(李謁平) |
입향 시조 | 이원남(李元男) |
[정의]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예신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포천시의 세거 성씨.
[개설]
경주 이씨(慶州李氏)는 신라의 좌명공신을 지낸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삼고 있다. 경주 이씨 대종보(大宗譜) 상계편에 따르면 이알평은 박혁거세 때 아찬에 올랐고, 32년(유리왕 9)에 양산촌(楊山村) 이씨(李氏)로 사성(賜姓)되었다고 한다. 536년(법흥왕 23)에 문선공(文宣公)으로 시호를 받았고, 656년(무열왕 3)에 은열왕(恩烈王)으로 추봉되었다. 그러나 계대(繼代)를 실전하여 이색(李穡)이 이제현(李齊賢)의 묘지(墓誌)를 쓸 때, 신라 때 소판(蘇判) 벼슬을 지낸 이거명(李居明) 이후의 세계를 적은 것이 연유가 되어 이거명이 중시조가 되었다.
[연원]
이알평의 후손에서 이개(李開)의 합천 이씨와 이위(李渭)의 차성 이씨가 갈라졌다. 중시조인 이거명의 후손에서는 증손 이윤장(李潤張)의 후손이 평창 이씨로, 아우인 이윤원(李潤遠)의 후손이 가평 이씨로, 5세손 이주좌(李周佐)의 후손이 아산 이씨로, 6세손 이우칭(李禹偁)의 후손이 재령 이씨로, 이양식(李陽植)이 우계 이씨로, 17세손 이영행(李永倖)이 진주 이씨로, 22세손 이반계(李攀桂)의 후손이 원주 이씨로 나뉘었다.
[입향 경위]
입향조는 이예신(李禮臣)[1466~1536]이다. 이예신은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일가를 이끌고 포천에 정착하여 학문 연마와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현황]
1934년 통계에 포천군 군내면 직두리에 20호 120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1953년 통계에는 신읍리에 52가구, 가산면 마산리·가산리·금현리에 95가구가 거주하였다 한다. 2000년 인구 통계에 따르면 총 3,622명이 포천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012년 현재 포천시 가산면 마산 1리 말미 마을 등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이항복을 배향한 화산 서원이 있고, 가산면 금현리에 이항복 신도비와 이항복의 아들 이성남(李星男)의 묘지명(墓誌銘)이 있다. 묘지명은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