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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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大中 |
이칭/별칭 | 사집(士執),청성(靑城),동호(東湖),순재(醇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의환 |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집(士執), 호는 청성(靑城). 할아버지는 성몽규(成夢奎)이고, 아버지는 내섬시 직장, 장수도 찰방 등을 지낸 성효기(成孝基)이다. 어머니는 유시진(柳始震)의 딸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며, 부인은 이덕로(李德老)의 딸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동생은 성대집(成大集)이며, 아들은 성해응(成海應)이다.
[활동 사항]
성대중(成大中)[1732~1809]은 1753년(영조 29) 생원이 되었고, 지재(遲齋) 김준(金焌)에게 『주역(周易)』을 배웠다. 1756년(영조 32) 정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1759년(영조 35) 교서관 부정자·교서관 정자·교서관 박사가 되었다. 1763년(영조 39) 통신사 조엄(趙曮)을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왔는데, 『일본록(日本錄)』에 그 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서얼 출신이었으나 영조의 탕평책 실시와 함께 통청 운동에 힘입어 1765년(영조 41) 청직(淸職)에 임명되었다. 1784년(정조 8) 흥해 군수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1787년(정조 11) 교리가 되었으며, 응제(應製)에 수석을 차지하였다. 1792년(정조 16) 북청 도호부사가 되었다. 정조의 문체 반정(文體反正) 때 글을 지어 올려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성대중은 노론 가운데 낙론계(洛論系)에 속한다. 북학 사상(北學思想)을 받아들여 홍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 등과 교유하였고, 자신의 가학(家學)이나 스승에게 전수받은 상수학적(象數學的)인 학풍을 이들에게 계승시켜 북학 사상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저서에 『청성집(靑城集)』과 『선만랑집(仙漫浪集)』이 있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향적산(香積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