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0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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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兪應孚 |
이칭/별칭 | 신지(信之),선장(善長),벽량(碧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신대광 |
활동 시기/일시 | 1448년 - 유응부 첨지중추원사 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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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456년 - 유응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91년 - 유응부 신원, 병조 판서에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791년 - 유응부 어정배식록 편정 시 사육신으로 재차 확정 |
출생지 | 유응부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
묘소|단소 | 사육신 묘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 1동 185-2 |
사당|배향지 | 민절 서원(愍節書院)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 185-2 |
사당|배향지 | 노운 서원(魯雲書院) - 홍주 |
사당|배향지 | 충곡 서원(忠谷書院)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 |
사당|배향지 | 창절사(彰節祠)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
사당|배향지 | 낙빈 서원(洛濱書院)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
사당|배향지 | 충렬사(忠烈祠) - 경상북도 의성군 |
사당|배향지 | 충렬사 - 강령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천녕(川寧) |
대표 관직 | 동지중추원사 |
[정의]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천녕(川寧). 자는 신지(信之). 호는 벽량(碧梁)이다.
[활동 사항]
유응부(兪應孚)[?~1456]는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서 출생하였다. 무과에 급제한 후 관직에 올라 1448년(세종 30) 첨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고, 1449년(세종 31) 경원 도호부사·경원 절제사를 거쳐, 1452년(단종 즉위년) 의주 목사에 임명되고, 1453년(단종 1) 평안 좌도 도절제사에 임명되었다. 1455년(단종 3) 4월 판강계 도호부사를 거쳐, 이 해 윤6월 세조가 즉위한 후 동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다. 1456년(세조 2)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등이 명나라 사신을 초청하여 연회를 여는 날을 택하여 그와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 등을 별운검(別雲劍)으로 정해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왕으로 세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왕이 별운검을 세우지 않자 동모자 중 한 사람이던 김질(金礩)의 밀고로 사건이 알려지게 되었다. 모진 국문을 당하고 참형으로 죽었다. 유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시조 3수가 전한다.
[묘소]
묘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 1동 185-2번지 사육신 묘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육신(死六臣)이라는 명칭은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2]이 지은 「육신전(六臣傳)」에 처음 등장한다. 1691년(숙종 17) 사육신의 절의를 국가에서 공인하여 유응부 등 6인의 관작을 추복(追復)할 때 병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또한 정조 때인 1791년(정조 15) 단종을 위하여 충성을 바친 여러 신하에게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임금의 명에 의해 공신의 신주를 배향하는 것]을 편정(編定)할 적에 사육신으로 재차 확정되었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의 민절 서원(愍節書院), 홍주의 노운 서원(魯雲書院),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의 충곡 서원(忠谷書院),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의 창절사(彰節祠),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의 낙빈 서원(洛濱書院), 경상북도 의성군의 충렬사(忠烈祠), 강령의 충렬사 등에 제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