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6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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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東鎬 |
영어공식명칭 | Kim Dongho |
이칭/별칭 | 흥오,만대,대호,동호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청희 |
출생 시기/일시 | 1877년 1월 16일 - 김동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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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5년 7월 - 김동호 대한광복회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8년 - 김동호 피체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2월 28일 - 김동호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언도받고 출옥함 |
몰년 시기/일시 | 1924년 11월 1일 - 김동호 사망 |
출생지 | 김동호 출생지 -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하군천리 98 |
묘소 | 김동호 묘소 -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하군천리 산 25-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광복회 재무부장 겸 강원도 지부장 |
[정의]
일제강점기 삼척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김동호(金東鎬)[1877~1924]의 본관은 삼척이다. 고조부는 김득선(金得先), 증조부는 김우경(金佑京), 조부는 김재언(金載彦), 아버지는 김시영[족보에 올라간 이름은 홍간(弘侃)]이다.
[활동 사항]
김동호는 1915년 8월 25일(음 7월 15일) 대구달성공원에서 풍기의 광복단과 대구의 조선국권회복단이 통합하여 비밀, 폭동, 암살을 행동 강령으로 삼고 군자금을 조달하여 국내의 혁명 기지를 확보하는 한편 만주의 독립군 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함으로써 적시에 폭동을 통해 독립을 쟁취할 목적으로 결성된 국내 대표 혁명 단체인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의 회원으로 활약하였다. 대한광복회는 각도에 지부를 두고 경기도 지부장에 김선호, 황해도 지부장에 이관구, 강원도 지부장에 김동호, 평안도 지부장에 조현균, 함경도 지부장에 최봉주, 경상도 지부장에 채기중, 충청도 지부장에 김한종, 전라도 지부장에 이병찬을 각각 임명하고 국내외에 연락 기관도 설치했다. 국내에는 경상북도 영주의 대동상점(大同商店)을 비롯하여 서울·해주·대구·삼척·광주·예산·연기·인천 등 국내와 안둥[安東]·창춘[長春]·만주 등지에 상업 조직으로 위장한 연락 기관들을 설치하고 정보 조직으로 활용하는 한편 전국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에 관한 포고문을 발송하기도 하였다. 이때 강원도 지부장 김동호는 강원도 지역 자산가들을 조사하여 포고문을 발송하는 등 강원도 지역 활동을 주도하였다. 1918년 대한광복회가 발각되어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 1심 판결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6년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1919년 9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및 징역 1년을 언도받은 뒤 공주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공주감옥 수감 생활을 하면서 고문을 당하기도 하는 등 고초를 겪다가 출옥한 뒤 1924년 경성 묵정동황금정(黃金亭)에서 일본경찰의 첩자에게 독살을 당하였다.
[묘소]
김동호의 묘는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하군천리 성황(城隍) 뒤 비탈 해좌(亥坐)에 있다가 독립운동 공적이 인정되어 정부 지원으로 사당을 세우면서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하군천리 산 25-1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표창(大統領表彰)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