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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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里 |
영어공식명칭 | Sangri |
이칭/별칭 | 뗏집거리,띠치거리,조치원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상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류주현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상리는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 있는 법정리이며, 상1리[상리 북부, 위뗏집거리]와 상2리[상리 남부, 아래뗏집거리]로 나뉜다. 상리 동쪽에 조천이 있으며, 조천교를 통해 충청북도 청주시와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이다.
[명칭 유래]
상리는 일제강점기에 마을이 형성되기 전에는 하천이었던 자리였다. 하천을 둑으로 막으면서 부지가 형성되었고, 비로소 마을이 자리 잡게 되었다.
상리(上里)라는 지명은 과거 부근 마을에 비하여 높은 지형[띠치거리, 띠풀언덕]이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상리라는 지명도 저치(苧峙)[띠치, 띠풀이 많이 나는 언덕]에서 유래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띠치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벽돌 대신 뗏장을 쌓아 황토로 벽을 바르고 억새로 지붕을 해서 이은 집이 많다 하여 붙여진 뗏집거리와 동일한 구역이다
[형성 및 변천]
상리는 본래 평리와 더불어 청주목 서강외 일하면 장대리 지역으로, 일명 조치원으로도 불리던 곳이다. 연기현 오금소의 동쪽에 있었고 조치원 오일장의 변두리에 있었으며, 일명 뗏집거리[또는 띠치거리]라고도 한다.
1914년 조치원리에 속하여 있다가 1940년 본정1목으로 분리되었으며, 1947년 상동으로 개칭되었다가 1988년 상리로 개정되었다.
상리의 조천은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경계이다. 6·25전쟁 후 통금이 있던 시절 통금이 있는 충청남도와 통금이 없는 충청북도의 경계에 있던 상리의 조천 때문에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원래 조천교 인도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다리였다고 한다. 당시 조천교의 난간이 철이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은 조천교의 철을 전부 뜯어 갔다. 광복 이후 조천교는 2차로로 새로 놓고 1983년에 4차로, 2020년 현재 6차로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다.
[자연환경]
상리는 조치원읍의 중앙 동단에 있으며 동쪽은 조천과 연접한 충청북도 오송읍과 경계를 이룬다. 남쪽은 명리, 서쪽은 원리와 교리, 북쪽은 평리와 접하여 있다.
상리는 주변에 비하여 다소 높은 언덕 형태를 이루던 곳이다. .
[현황]
2020년 8월 기준으로 총 408가구에 65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면적은 0.114㎢이다.
조치원읍 상리는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청주시, 충청남도 천안시로 갈 수 있는 4차로 도로와 조천교 및 조치원공영버스터미널이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