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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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己丑銘阿彌陀佛碑像 |
영어공식명칭 | Stele of Amitabha Buddha with Inscription of "Gichuk Year"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명암동 87]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이용윤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불비상.
[개설]
기축명아미타불비상은 1960년 당시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碑巖寺)에서 다른 2점의 불비상(佛碑像)과 함께 발견되었다. 명문에 의하면 689년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196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가 현재는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소장 및 관리를 하고 있다.
[형태]
기축명아미타불비상은 편암을 다듬어 주형광배(舟形光背) 형태로 만들었으며, 앞면에만 조각이 있고 위로 갈수록 두께가 얇아져 곡면을 이룬다. 뒷면 윗부분에는 기축명아미타불비상의 조성 배경을 말해 주는 4행의 명문이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아미타여래가 서방극락정토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투시도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상하를 4개 구획으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다.
제일 아래쪽 구획에는 격자 형태의 난간과 난간 가운데에 계단이 나 있다. 계단 위쪽에는 중앙의 연꽃 형태 향로를 중심으로 서방극락정토의 칠보연지(七寶蓮池)와 그 속에서 피어난 연꽃들, 꿇어 앉은 채 가운데를 바라보고 있는 공양보살상들과 사자상들이 있다. 연화 향로는 복련(覆蓮)으로 표현한 좌대, 물레 자국이 있는 중대, 둥근 형태의 몸체로 구성되어 있다. 향로 아래쪽에서 솟아나와 좌우로 펼쳐진 연꽃 줄기에는 넓고 큰 연잎과 연꽃이 표현되어 있다. 보살상들은 모두 연꽃을 대좌로 삼아 서 있다. 향로 주변에는 출렁이는 물결로 표현된 칠보연지가 있다. 두광과 신광을 갖춘 공양보살상들은 향로를 향하여 마주보고 연화좌 위에 꿇어 앉아 있다. 보살상 뒤편에는 역시 중앙을 향하여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자상이 있다.
그 위쪽에는 활짝 핀 연꽃 위에 앉아서 설법하고 있는 아미타여래상과 권속들이 있다. 가운데 자리한 본존 아미타여래는 유난히 큰 원형의 두광과 함께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다. 법의는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이고, 수인은 불분명하지만 시무외 여원인을 결한 것으로 보인다. 본존 좌우에 자리한 보살상은 긴 몸에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이는데 보관과 장식까지 섬세하게 조각했다.
보살상 뒤쪽으로는 상체만 내밀고 있는 나한상(羅漢像)을 표현했다. 보살상 윗면에는 연꽃 위에 결가부좌한 5구의 화불(化佛)을 새기고 가장자리를 따라 화불보다 큰 좌상 7구를 배치하였다.
윗부분이 상당 부분 파손되어 일부 도상만 확인된다. 이 소불상 사이에 보주(寶珠)[탑이나 석등 따위의 맨 꼭대기에 얹은 구슬 모양의 장식]와 영락(瓔珞)[금관 따위에 매달아 반짝거리도록 한 얇은 쇠붙이 장식]이 뒤덮인 나뭇가지와 잎을 표현하여 극락세계의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징]
기축명아미타불비상의 뒷면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지금까지 해석된 명문은 “己丑年二月十五日 此爲七世父母及□□子□都□ 阿彌陀佛及諸佛菩薩像 敬造” 정도이다. 내용은 기축년 2월 15일 7세 부모를 비롯하여 누군가를 위하여 아미타여래를 비롯한 여러 부처님과 보살상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명문에서 언급된 기축년은 689년(신문왕 9)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기축명아미타불비상은 통일신라시대인 7세기 후반에 아미타 신앙 유행과 함께 조성되었으며, 서방극락정토에서 아미타불이 설법하는 장면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경우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서 거의 유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축명아미타불비상은 삼국시대의 보수적인 불상 양식에 새롭게 유입된 중국 당나라 불상 양식이 서로 결합되는 통일신라시대 초기 불상 양식의 단면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6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