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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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宗洪判書宅 |
영어공식명칭 | Sejong Hongpanseodaek House |
이칭/별칭 | 청원 유계화 가옥,세종 유계화 가옥,세종 부강리 고택 |
분야 | 역사/근현대,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용포동촌길 43-19[부강리 385]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정기 |
건립 시기/일시 | 1866년(고종 3) - 세종 홍판서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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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월 14일 - 청원 유계화 가옥 국가민속문화재 제138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4년 12월 12일 - 청원 유계화 가옥에서 세종 유계화 가옥으로 개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7년 2월 28일 - 세종 유계화 가옥에서 세종 부강리 고택으로 개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8년 11월 5일 - 세종 부강리 고택에서 세종 홍판서댁으로 개칭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8년 11월 5일 - 세종 홍판서댁 국가민속문화재 제138호 재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세종 홍판서댁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세종 홍판서댁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용포동촌길 43-19[부강리 385] |
원소재지 | 세종 홍판서댁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용포동촌길 43-19[부강리 385] |
성격 | 건물 |
양식 | ‘ㅁ’자형 평면 |
정면 칸수 | 6칸[안채]|6칸[사랑채] |
측면 칸수 | 3칸[안채]|2.5칸[사랑채]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세종특별자치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에 있는 개항기 전통가옥.
[개설]
세종 홍판서댁은 안채 대청에 적힌 상량문에 ‘崇禎紀元後四丙寅二月二十四日申時上樑’이라는 기록이 있어 1866년(고종 3)에 지은 집으로 확인된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ㄷ’자형 안채와 정면 6칸 측면 2.5칸의 ‘ㄷ’자형 사랑채가 마주 보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정남향의 ‘ㅁ’자형 평면을 구성하며, 사랑채보다 안채를 한 단 높게 축조하였다.
세종 홍판서댁은 충청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ㅁ’자로 구성한 점, 가옥 규모에 비하여 대문간채나 곡간채가 없는 점, 안마당에 우물을 두고 나무를 심어 일반적인 관념을 따르지 않고 실용성을 중시한 점 등이 특징이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에 위치하여 있다. 세종 홍판서댁이 있는 용포마을은 복두산(幞頭山)[281m]에서 서남쪽으로 길게 내려뻗은 줄기의 완만한 경사지에 있다. 현재 경부선 철도와 부강역이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형태]
세종 홍판서댁은 안채와 사랑채가 결합된 ‘ㅁ’자형 평면을 구성하고 있다. 충청 지역 전통가옥은 일반적으로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 평면 2개를 배치하든가 ‘一’자형 사랑채 뒤에 ‘ㄷ’모양의 안채를 조합하는 튼 ‘ㅁ’자형 집이 많은 가운데 세종 홍판서댁 가옥은 안마당을 트인 부분 없이 ‘ㅁ’자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안채는 전·후 툇간을 둔 대청 중심으로 왼쪽에 건넌방을 두고 오른쪽에 안방과 부엌을 배치하였다. 안방 앞에는 대청과 연결된 전퇴(前退)[집채의 앞쪽에 다른 기둥을 세워 만든 조그마한 칸살]가 있고, 안방 뒤에는 골방을 두어 수납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방의 동쪽에는 앞날개 쪽으로 부엌을 길게 두었다. 규모가 3칸 반 규모로 대단히 크다. 상부에는 마루가 깔린 다락을 두었다. 부엌 부분의 동쪽 처마 밑에는 헛기둥을 세우고 살강을 설치하였다. 살강은 귀틀을 걸고 자귀질한 흔적이 남아 있는 통널을 통맞춤하여 주목된다.
안채의 건넌방 앞쪽에는 상부에 다락을 둔 부엌과 중문간을 배치하였다. 건넌방과 대청의 서쪽 및 북쪽에는 쪽마루를 달았다. 부엌 앞쪽 날개에는 아랫방과 샛문간이 사랑채로 이어지도록 구성되었다. 샛문간은 다시 꺾어져 사랑채와 연결된다.
사랑채의 평면은 동쪽에서부터 부엌, 사랑방, 사랑대청, 작은사랑방, 부엌 순으로 구성하였다. 사랑채 전면 전체에 툇마루를 둔 것과 동쪽에 부뚜막이 있는 독립된 부엌을 둔 것은 다른 가옥의 사랑채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사랑대청은 1칸 규모로 작으며, 앞뒤로 문이 설치되어 있어 안채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구조는 안채가 2고주 5량가, 사랑채가 1고주 3량가, 날개 부분은 맞걸이 3량으로 하였다. 안채의 대청마루 가운데에는 대량(大樑)[대들보]이 전후 처마기둥 사이에 장통보로 연결되었다. 기둥에 비하여 우람한 부재로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상부는 장혀가 받친 납도리로 가구를 구성하고, 사다리꼴의 판대공을 세웠다. 대공(大共|臺工|大工)[들보 위에 세워서 마룻보를 받치는 짧은 기둥]과 장혀 사이에는 접시 받침을 끼워 보강하였다.
사랑채는 전퇴를 둔 3량가로 전면에 퇴보를 두고 후면에 대들보를 설치하여 퇴칸 기둥 상부에 헛도리를 두었고, 대들보 상부에 동자주(童子柱)[들보 위에 세우는 짧은 기둥]를 얹고 종도리를 설치하여 가구를 구성하였다.
[현황]
세종 홍판서댁은 논밭이 완만한 경사지에 남향으로 자리하였다. 현재 이 고택은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앞쪽에 ‘ㄩ’모양의 사랑채를 두고, 그 후면에 ‘ㄇ’ 모양의 안채를 연결한 ‘ㅁ’자형의 평면을 구성하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의 양 날개채와 연결되어 있으며,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되는 부분은 지붕의 높이를 달리하고 있다.
서쪽에는 작은 담장을 설치하고 동쪽 마당은 작게 만들어 안채와 사랑채 영역을 구획했다. 사랑마당 앞에는 행랑채가 놓이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가옥에는 남아 있지 않으며, 대지의 경계에 담장을 두르고 대문인 사주문을 설치하였다. 현재 이 집의 대문은 남쪽으로 나 있으나 원래 대문은 서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뚜렷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60여년 전쯤 남쪽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담장 밖으로는 소방시설인 기계실이 위치하고 있다. 안마당의 우물과 향나무, 뒤뜰의 향나무와 감나무 등으로 전통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1984년 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38호 ‘청원 유계화 가옥’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12월 12일 ‘세종 유계화 가옥’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 2017년 지정 명칭 부여 지침에 따라 ‘마을명, 고택’을 사용하여 ‘세종 부강리 고택(世宗芙江里古宅)’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고택의 창건 시기와 역사적 문헌, 고증, 지역 등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명칭을 고려하여 2018년 11월 5일 ‘세종 홍판서댁(世宗 洪判書宅)’으로 명칭이 다시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세종 홍판서댁은 중부지방에서 드믄 ‘ㅁ’자형 평면 구조인 조선시대 양반주택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민속문화재 제138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