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6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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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邊應井 |
영어공식명칭 | Byeon Eungjung |
이칭/별칭 | 문숙,충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안경희 |
출생 시기/일시 | 1557년(명종 12) - 변응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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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85년(선조 18) - 변응정 무과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선조 25) - 변응정 전라도 해남현감이 됨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선조 25) - 변응정 해남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592년(선조 25) - 변응정 사망 |
묘소|단소 | 변응정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
사당|배향지 | 변응정 사당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람리 245 |
사당|배향지 | 금산 종용사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 167-2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원주 |
대표 관직 | 월송만호|선전관|해남현감|병조판서 |
[정의]
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으로 금산전투에 참전한 무신.
[개설]
변응정(邊應井)[1557~1592]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하였던 무신으로 전동면 청람리 일대에 거주하였던 원주변씨(原洲邉氏) 가문의 후손이다.
[가계]
변응정의 본관(本貫)은 원주(原州)이고 자는 문숙(文淑)이다. 원양군(原陽君) 변사겸(邊士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력(經歷) 변윤계(邊胤季)이며, 아버지는 공조좌랑 변열(邊悅)이다. 어머니는 병사 이흔(李昕)의 딸 철성이씨(鐵城李氏)이다.
[활동 사항]
변응정은 일찍이 문예에 능숙하였으나 문과에 여러 번 실패하였다. 그러다 1575년(선조 18)에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월송만호(越松萬戶)·선전관 등을 거쳐 1592년(선조 25) 전라도 해남현감에 이르렀다. 해남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내의 소요를 진정시키는 한편, 격문을 돌려 의병을 규합하였다. 또 대군으로 침입한 적의 본토가 비어 있을 것이라는 근거를 들어 본토를 공략하면 왜적은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벌을 상소하였다.
금산에서 조헌(趙憲)과 합류하여 공격할 것을 약속하였으나 행군에 차질이 생겨 조헌이 전사한 뒤에 도착하였다. 육박전(肉薄戰)[적과 직접 맞붙어서 총검으로 치고받고 싸움]으로 왜적과 싸워 큰 전과를 올렸으나 적의 야습(夜襲)[밤에 적을 갑자기 덥치어 공격함]을 받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조정에서는 변응정을 전라수군절도사에 임명하였으나 변응정은 임명 사실을 알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변응정의 충의에 탄복한 왜적들은 큰 무덤을 만들고 표지목을 세워 조문하기에 이르렀는데 “조선의 충간이요, 의열의 담력이다”[조선충간의담(朝鮮忠肝義膽)]라고 하였다. 또한 당시 영의정이었던 유성룡은 『징비록(懲毖錄)』에서 “왜적을 무찌르는 데 용맹한 충신들이 모두 웅령에서 전사하였으니, 이로 말마암아 전라도 일대가 홀로 온전하여 중흥의 기본이 되게 한 것은 바로 이 충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며, 우암 송시열은 ‘만세불사’라 칭송하였다.
한편 변응정은 싸움에 나서기에 앞서 구국의 마음으로 죽음을 결심하고는 동생에게 글을 보내어 “임금이 욕을 당하였으나, 신하로서 죽음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또한 자신이 전사하고 나면 홀로 남으실 노모를 걱정하며 작별의 뜻으로써 입던 옷과 머리카락 그리고 손톱을 함께 보내 죽은 뒤 장례를 치르도록 당부하였다. 당시 변응정이 썼다고 전하여지는 혈서가 원주변씨 종가에 남아 있다고 하나 현재는 찾을 수 없다.
[묘소]
변응정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변응정은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追贈)[종2품 이상 죽은 아버지·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주던 일]되고, 시호(諡號)[제왕이나 재상·유현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는 충장(忠壯)이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람리 245번지에 변응정 사당이 있다. 변응정 사당은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산의 종용사(從容祠) 등에도 배향(配享)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