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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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金宗喆旌閭 |
이칭/별칭 | 효자 김종철 정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산 8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순영 |
건립 시기/일시 | 1979년 - 효자 김종철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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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09월 30일 - 효자 김종철 정려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8호 지정 |
현 소재지 | 효자 김종철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산 85 |
원소재지 | 효자 김종철 정려 -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쌍류리 산 85 |
성격 | 정려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2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강릉김씨 문중 |
관리자 | 강릉김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8호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에 있는 김종철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개설]
효자 김종철 정려는 김종철(金宗喆)[1755~1817]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79년에 건립되었다. 김종철은 본관이 강릉이며, 자는 여명(汝明)이다. 김상기(金尙基)[1724~1788]와 송필후의 딸 은진송씨[1729~1767]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종철은 8세 때부터 모친의 병환을 수발하였다. 김종철이 13세가 되던 1767년(영조 43)에 어머니가 38세로 세상을 떠났다. 또한 김종철은 부친이 병석에 있을 때 대변을 맛보아 약을 지었고 손가락을 잘라 소생시키기도 하였다. 부친은 1788년(정조 12) 64세로 임종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울진현령을 지낸 장조카 김경현을 따라 진천으로 이사간 후에도 제삿날에는 100리가 넘는 종갓집을 찾아가는 등 조상을 위하는 효심이 대단하였다. 김종철은 나이 63세로 운명하였다. 묘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탑선골에 있다.
[위치]
연서면 소재지에서 604번 지방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5㎞ 정도 가면 쌍류리 마을이 나온다. 효자 김종철 정려는 쌍류초등학교 뒤편 남동향사면 하단부에 있다.
[변천]
효자 김종철 정려는 김종철의 손자 김진수(金振遂)[1832~1877]와 손부 칠원윤씨, 증손 김성기(金性起)의 효열(孝烈)[효행과 열행을 아우르는 말]을 함께 기리기 위하여 강릉김씨 문중에서 건립한 것이다.
김종철은 효행으로 몽교관에 증직되었으나 명정을 받은 사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명정을 받은 사실이 없음은 임헌회(任憲晦)[1811~1876]가 지은 김종철전에 잘 나타난다. 즉 김종철의 효행은 남달랐기에 조정에 아뢰면 즉시 명정을 받을 수 있지만 중간에서 이를 올리지 않아 유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연기지』와 『조선환여승람』에 김종철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라 여러 고을의 장보(章甫)[유생을 달리 이르는 말]들이 감영에 상소하여 순조 연간에 동몽교관에 증직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효자 김종철 정려에는 명정현판이나 다른 관련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가 어렵다. 다만 1867년 12월 임헌회가 지은 효자 김종철전을 통하여 명정을 주도한 인물들을 추정할 수 있다.
김종철의 손자 김진수는 낙론(洛論)[조선 후기 기호학파 가운데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한 학파]의 대가이며, 경학과 성리학에 조예가 깊은 임헌회의 문하이다. 김진수는 같은 문하인 서정순(徐政淳), 전우(田愚)와도 사귀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임헌회가 김진수의 할어비지인 김종철의 효행문을 지어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진수와 동문수학한 정재경(鄭在褧)이 상소문을 작성하여 관에 올렸으나 이를 조정에 올리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명정 여부는 불분명한 것으로 보여진다.
[형태]
효자 김종철 정려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을 취하고 있다. 효자 김종철 정려의 하단은 화강석재로 된 방형의 초석 위에 원주를 올렸으며, 창방 위에는 각각 2개의 화반대공을 올렸다. 각 면에는 홍살을 돌렸으며, 양 측면의 박공 밑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문을 두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고 바닥은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현황]
효자 김종철 정려의 왼쪽 칸 내부 천장에는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강릉김공종철전’이라는 김종철의 행장이 기록된 현판[165×45㎝]이 걸려 있다. 행장 현판 위에는 1961년 연기향교에서 받은 손부 칠원윤씨의 포창문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바닥에는 1934년 임감제가 술한 김진수와 김진수의 부인인 열부 칠원윤씨의 행적을 담아 1979년에 세운 가로 52㎝, 세로 24㎝, 높이 147㎝의 여표비(閭表碑)가 있다.
효자 김종철 정려의 오른쪽 칸 내부에는 1954년 연기향교에서 받은 김성기의 포창문 현판[170×40㎝]이 걸려 있다. 이 외에도 연기향교에서 받은 김남영(金南瑛)[김진수의 후손]의 포창문 등이 걸려 있다.
효자 김종철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효자 김종철 정려는 후손들에게 김종철의 효행을 알려서 효 덕목의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효 정신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