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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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鶴里-旗告祀 |
영어공식명칭 | Sacrificial Rite for the Farming Flag of Eungol Village in Songhakri |
이칭/별칭 | 송학리 원고개 기고사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송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민정희 |
중단 시기/일시 | 2010년 - 송학리 은골 기고사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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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송학리 은골 기고사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송학2리 은골 공동 놀이마당 |
성격 | 고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정월대보름날 동틀 무렵 |
신당/신체 | 농기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송학리 은골 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동틀 무렵에 풍년을 비는 뜻에서 농기를 세우고 지낸 고사.
[개설]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송학2리 은골[원고개]에서는 2010년까지 정월 대보름날 새벽이면 기고사를 지냈다. 주민들은 농기(農旗) 앞에서 마을의 안녕과 한 해 농사의 풍년을 빌었다. 해마다 정성껏 기고사를 지내 오다가 마을의 호수가 급격히 줄고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폐지되었다. 마지막 고사를 지내던 해에는 농기에 깃든 신령께 올해를 끝으로 더 이상 정성을 드리지 않게 되었음을 고하였다. 비록 고사는 폐지되지만 앞으로도 마을이 무탈하길 빌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을의 농기는 1948년에 새로 장만한 것이다. 전에 있던 낡은 농기를 그대로 본떠 제작하였다. 전체적으로 가로가 짧고, 세로가 긴 직사각형의 천에 전서(篆書)에 가까운 글씨체로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고 쓰여 있다. 좌측에는 ‘무자정월(戊子正月) 일(日)’, 우측에는 ‘은곡(隱谷)’이라고 썼다. 농기의 제작연도와 동명을 기입한 것이다. 기폭의 제일 윗부분을 제외하고 삼면(三面)에 흰 천으로 지네발을 달았다. 깃봉에는 꿩장목을 장식하고 밑에는 가느다란 실로 기수염을 늘였다. 기고사는 폐지되었지만 마을에서는 농기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절차]
은골에서는 정초가 되면 기고사를 주관하는 유사를 정하였다. 유사는 형편이 닿는 집에서 돌아가면서 맡았다. 농기는 정월 열나흗날 해가 지면 마을 가운데 공터에 세웠다. 산 밑에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어서 농기를 세울 만한 장소를 찾기 어려웠다. 다행히 마을 초입에 공동 놀이마당이 있어서 농기를 세웠다.
기고사는 음력 정월대보름날 동틀 무렵에 지냈다. 남자들이 중심이 되어 유교식으로 제사를 모셨다. 여자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농기 앞에 북쪽으로 상을 펴놓고 떡시루[백설기], 북어[1마리], 대추, 밤, 곶감 등을 진설하였다. 떡 시루 위에는 유사의 밥그릇에 쌀을 담아서 촛불을 환히 밝히고 실 한 타래를 둘러놓았다. 준비가 끝나면 유사가 앞으로 나아가 잔을 올리고 절을 하였다. 모두 석 잔을 올렸으며 축문은 생략하였다. 이어서 대동소지 한 장을 올리며 마을이 평안하길 빌었고 농기에 깃든 신령께도 소지 한 장을 올렸다. 정성을 드린 뒤에 백지에 떡 한 덩어리, 북어대가리, 밤, 대추 등을 싸서 깃대에 묶어 놓았다. 예로 깃대에 묶어둔 폐백 음식을 가져다가 먹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신이 있다. 그리하여 아이 못 낳는 부인이나 처녀·총각들이 기고사가 끝나면 서둘러 깃대에 묶어 둔 폐백 음식을 가져갔다.
정월대보름날 새벽녘이면 기고사가 끝났다. 아침에 마을사람들 모두 유사 집에 모여서 음복하였다. 고사떡을 먹으면 재수가 있다고 하여 제물을 이웃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