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179 |
---|---|
한자 | 坪基里旗告祀 |
영어공식명칭 | Sacrificial Rite for the Farming Flag of Pyeonggi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평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민정희 |
중단 시기/일시 | 1960년대 - 평기리 아랫말 기고사 폐지 |
---|---|
의례 장소 | 평기리 기고사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평기리 마을회관 앞 공터 |
성격 | 고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정월 보름날 동틀 무렵 |
신당/신체 | 농기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평기리 윗말에서 음력 정월 보름날 동틀 무렵에 풍년을 비는 뜻에서 농기에 지내는 고사.
[개설]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평기리의 윗말에서는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간절히 바라며 음력 정월 보름날 동틀 무렵 농기(農旗)에 기고사를 지낸다.
[연원 및 변천]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평기리 윗말과 아랫말에서 기고사를 지냈다. 윗말의 기를 ‘할아버지기’, 아랫말의 기를 ‘할머니기’라고 불렀다. 두 기의 크기와 형태는 비슷하였다. 윗말 기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아랫말 기에는 ‘신농유업(神農遺業)’이라고 쓰여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이와 달린 두 마을 모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신농유업(神農遺業)이 똑같이 쓰여 있고 깃대에 묶던 기수건의 색깔[윗말은 검은색, 아랫말은 붉은색]만 달랐다고도 한다. 1960년대 이후 아랫말 기고사는 폐지되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 주민들 사이에서 윗말 기고사도 폐지하자는 의견이 모였다. 마을회의를 하여 공론을 모을 당시 이장과 원로들의 반대로 기고사가 유지될 수 있었다. 마을회의 후로 윗말과 아랫말에서 돌아가면서 유사를 맡았다. 2000년대 초엽부터는 마을회관 앞에 기를 세워 놓고 정성을 드린다. 유사는 동계장, 이장, 노인회장 등 대개 마을 대표가 맡는다. 제물 준비는 부녀회원들의 몫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지금의 농기는 기폭 가운데 세로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신농씨견업(神農氏遣業)’이라고 묵서(墨書)되어 있다. 직사각형의 흰색 천에 사면(四面)에는 검정 지네발을 달았다. 깃대 꼭대기에는 꿩장목으로 장식하였다.
[절차]
해마다 농기는 정월 초사흗날부터 세웠다. 최근에는 너무 일찍 세워 놓으면 농기가 상할 우려가 있어서 하루 전에 세운다. 공터에 기가 쓰러지지 않도록 삼방줄을 내려서 고정시키고, 부정을 막는 뜻에서 그 앞에 황토를 펴 놓는다. 정월 보름께 세운 농기는 2월 초하룻날 내린다. 유사들은 하루 전날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마을회관으로 모인다. 정월 보름날 동틀 무렵에 깃대 앞에 고사상을 차린다. 가장 중앙에 떡시루를 놓고 왼쪽에 돼지머리를 올린다. 앞쪽에는 대추, 밤, 곶감, 배, 사과 등을 푸짐하게 담아 놓는다. 기고사에는 부정하지 않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준비가 끝나면 유사가 중심이 되어 유교식으로 정성을 드린다. 마을 대표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잔을 올린다. 고사가 끝나면 백지에 떡 한 덩어리, 밤, 대추 등을 싸서 깃대에 묶는다. 마지막으로 유사는 농사가 잘 되길 바라며 농기 소지를 올리고, 마을 전체의 안녕을 비는 뜻에서 마을 소지를 올린다. 매년 기고사를 도맡아 지내는 유사들을 위하여도 소지를 올려준다. 소지를 올린 뒤에는 마을회관에 모여서 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