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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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Bamjeol |
이칭/별칭 | 율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광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7년 - 「밤절」, 『금남면향토지』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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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금병산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리 |
성격 | 사찰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인조|스님 |
모티프 유형 | 대접 만하게 맺힌 밤나무|인조 임금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대리에 있는 밤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이괄의 난을 피해 당시 충청도 연기군 금남면 금병산(金屛山)[372m]을 지나게 된 인조(仁祖)가 한 사찰에 들렀다가 밤으로 후한 대접을 받고 밤절[율사(栗寺)]이라는 이름과 상을 내렸다고 전해지는 사찰설화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7년 금남면향토지발간위원회에서 발간한 「금남면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밤절」에는 조선 후기 왕 인조가 ‘이괄의 난’ 때 들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절 부근에는 밤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으나 나무에 밤이 달리지 않아 화초로 보는 밤나무라는 이야기까지 생겼다. 그러던 어느 해 밤나무 가지가 휘어지도록 밤이 달렸다. 어떤 밤송이는 주먹 만하고 어느 것은 사발 만했다. 이괄의 난이 발생하였을 때 난을 피해 연기군 금남면 금병산을 지나던 인조가 이 절에 들르게 되었다. 스님들은 밤을 찌고 구워서 인조를 대접하고, 밤 한 섬을 짐꾼에게 실어 보내기도 하였다. 인조는 사찰을 ‘밤절’이라 명명하고, 공산성에서 한양길에 오를 때 영의정 이원익에게 명해서 상을 내린다. 그 후 사찰은 ‘밤절’로 불리게 되었다. 절간이 있던 마을을 밤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티프 분석]
「밤절」의 주요 모티프는 ‘대접만 하게 맺힌 밤’과 ‘인조 임금’이다. 나라에 난리가 나면 특이한 자연 현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밤절」의 경우 영대리 밤절 부근의 밤나무에서 대접만 한 밤이 달렸다고 말한다. 난리가 났을 때 밤나무에서 대접만 한 밤이 달렸다는 것은 당시 상황이 태평성대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