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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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最大生産地域鳥致院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근대,현대 |
집필자 | 정규호 |
[단무지의 유래와 한국화]
단무지는 무를 시들하게 말린 뒤 소금과 쌀겨 등에 절여 만든, 우리나라의 짠지와 비슷한 일본 저장식품의 일종이다.
한국산업규격(KS)에서는 단무지를 ‘건조 또는 소금에 절여 탈수한 무를 소금겨에 담가 절인 것 또는 감미료, 산미료, 향신료 등을 가한 조미액에 담근 것’이라 정의하였다.
일본어로 ‘타쿠앙’ 혹은 ‘타쿠앙쓰게’라고 칭하며, 일제강점기에 국내에 전반적으로 보급되는 과정에서 ‘다꽝’ 혹은 ‘다꾸앙’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단맛이 있는 절인 무라는 뜻의 ‘단무지’로 명칭이 보편화되었다.
여기서 ‘지’는 사실 김치를 일컫는 사투리로, 묵은지 등의 표현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오늘날의 충청도·전라도 지역에서는 여전히 김치를 ‘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단무지를 ‘겨절임무우’라고 칭하며, 이처럼 우리와 명칭이 상이한 것은 단무지가 보편화된 것이 근대 이후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다꽝’은 표준국어대사전 기준 비표준어로 등록되어 있다.
단무지의 유래에 관하여서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일본에서 발명되었다는 것이 가장 크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 에도시대 초기 나라가 혼란하던 시절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는 백성이 많았다. 이를 가엾게 여긴 대선사 타쿠앙이 무를 바람에 말려 시들시들하게 만든 뒤 소금과 쌀겨로 절이고 버무려서 나무 통 속에 담아 익혀 무절임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그 무절임은 소금에 절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장기간 저장에 용이하였고, 백성들은 겨우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마침 그 마을을 지나가던 도쿠가와 이에미쓰 장군이 이 무절임을 맛보고는 맛이 좋다며 창시자인 스님의 이름을 따서 이를 ‘타쿠앙’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이 이야기 외에도 단무지는 타쿠앙이 직접 발명한 것이 아니라 긴사이 지방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대중화되어 먹어 오던 것을 간토 지방에 전파한 것뿐이라는 설도 있고 타쿠앙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설, 고구려 때 택암(澤庵)[타쿠앙의 한자식 발음] 스님이 당시 미개한 일본인들에게 다양한 선진 문물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무를 절여 먹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 시초라는 설 등이 있으나 확실한 문헌적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설득력이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다쿠앙이 이러한 절임 방식 자체를 발명하였다고 확대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다쿠앙이 생존하여 있던 16세기 이전 시대에 작성된 우리나라, 중국, 일본의 고대 문헌[제민요술, 고사기, 연희식, 임원십육지 등]을 살펴보면 이미 소금·식초·간장 등으로 채소를 절여 먹는 조리법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무지는 한국식으로 현지화되는 과정에서 절임 방식도 일본과 달라졌다.
일본의 단무지는 쌀겨절임 방식이어서 상대적으로 짠맛이 강한 반면에 한국식 단무지는 초절임 방식으로 제조되기 때문에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식감 역시 다른데 일본식 단무지는 제조 과정에서 수분을 많이 잃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질긴 느낌이 든다면 한국식 단무지는 아삭아삭한 식감이 있다.
일본식 단무지의 쌀겨절임 방식은 한국식 단무지의 초절임 방식에 비하여 생산비용이 다소 높아서 일본에서는 단무지가 고급반찬의 하나로 여겨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는 단무지가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저렴한 반찬으로 취급되지만 일본에서는 쌀밥에 단무지 한 가지만으로도 식사를 할 정도로 주요 반찬으로 취급하며, 이 때문에 고급 일식집에서는 직접 단무지를 담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잡한 제조 과정과 차라리 구매하는 비용이 더 저렴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완제품을 구입해서 먹는 경우가 흔하다.
일각에서는 오늘날 우리나라 단무지가 일본 단무지와는 제조 과정, 식감, 모양, 색깔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으므로 다른 식품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있다.
단무지의 독특한 특징을 하나 더 꼽으면 일본에서 유래하여 한국에서 보편화된 반찬임에도 중화요리 전문점에서 많은 수요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단무지는 양파와 함께 중화요리 전문점의 가장 일반적이고 필수적인 반찬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사실상 단무지가 제공되지 않는 중국집은 찾을 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또한 단무지는 김밥에 빠지지 않고 포함되는 재료이기 때문에 수요의 대부분이 분식점, 김밥 전문점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단무지의 제조과정]
단무지의 종류에는 여름 단무지와 겨울 단무지가 있다.
겨울 단무지는 가을에 수확한 무를 담가 장기간 동안 숙성시키는 것이고, 여름 단무지는 여름에 수확한 생무를 1주일 내외의 단기간 동안만 담가서 익히는 것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 위치한 한 단무지 생산업체에 따르면 단무지 생산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절임 무를 수돗물로 세척한다. 그다음 무 외피 및 잔여 이물질을 제거한 후 용도에 맞게 크기를 자르고 원재료를 선별한다. 그렇게 선별된 무들을 수차례 탈염하여 적정한 수준의 염도를 유지시켜 놓는다. 이러한 과정과 별도로 단무지의 새콤달콤한 맛을 내기 위한 조미액을 따로 만든다. 조미액은 정제수에 식품 첨가물을 첨가한 후 자동 혼합기를 이용하여 제조한다. 탈염이 완료된 무에 앞서 제조된 조미액을 충진하여 일정 기간 숙성시키는 1차 조미숙성 공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는 단무지가 일정한 향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수차례에 걸쳐 단무지를 상하로 교반하는 작업이 동반된다. 이렇게 조미숙성이 완료된 무를 김밥용, 반찬용 등 용도와 규격에 맞게 세절한다. 마지막으로 세절된 무를 자동포장기를 이용하여 포장한다. 이때 2차 조미액이 충진된다.
단무지가 노란 이유는 제조 과정에서 치자를 우려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치자 대신 식용색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때 단무지는 이러한 노란 색깔 탓에 인공색소를 비롯한 각종 합성감미료와 합성보존료 등 식품첨가물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다는 인식이 퍼져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식품첨가물은 국가기관이 정한 엄격한 기준을 통하여 안전성 관리를 받기 때문에 안심해도 좋으며, 현재는 이러한 오해가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타르 등에서 화학적으로 추출한 황색 색소를 절임류 식품에 사용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하고 있어 현재는 치자열매에서 추출한 치자황색소를 이용하고 있다.
이런 단무지를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근장(根長)[뿌리 길이]이 길고 단단하여 썰었을 때 동그란 형태로 균일하게 잘라지는 무를 준비한다. 소금, 식초, 설탕, 치자도 함께 준비한다. 무를 깨끗하게 세척하고 난 뒤 절반으로 갈라서 소금과 물을 넣고 6시간 이상 절임을 한다. 충분히 절여진 무는 형태가 구부러지는데 이때 물을 버리면 된다. 그다음 소금, 식초, 설탕, 치자 등을 물에 넣고 함께 끓여서 물이 충분히 뜨거워지면 치자는 건져내고 나머지는 무에 부어 일주일 정도 상온 상태에서 보관하여 둔다. 이후 최종적으로 단무지가 완성되면 냉장 보관해야 한다.
[단무지용 무]
일반적으로 단무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무지용 무를 주로 사용한다. 여기서 단무지용 무란 생물학적 분류상 남지계 무로, 오늘날 단무지 절임공장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긴 외형의 백색무를 칭한다.
사실 남지계 무가 정확히 언제부터 국내에서 재배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식품학계와 생물학계에서는 오래전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남지계 무는 상대적으로 통통하지 않고 길쭉하기 때문에 하천변 둔치 등 토심이 깊고 비옥한 사질토에서 잘 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에서는 주로 현 세종특별자치시가 위치한 금강을 비롯하여 한강, 낙동강, 영산강과 이들 하천의 지류 주변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다.
단무지용 무의 품종에는 신선단무지무, 학까이, R64무, 낙동강단무지무 등이 있다.
신선단무지무는 육질이 단단하고 근장이 길며 아삭하면서도 근피가 얇고 매끈하여 상품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학까이무는 단무지 가공용으로 최적의 무로 평가받고 있다. 절임 시 중량 감소가 적고 변색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등 병충해에 강해서 재배하기 쉬운 품종이기 때문이다.
R64무는 식감과 맛이 좋고 H형으로 자라기 때문에 봄 단무지용으로 쓰이기에 좋다.
낙동강단무지무는 위황병(萎黃病)[햇빛이나 철분 부족으로 식물의 잎이 푸른빛을 잃고 희거나 누런빛을 띠는 병]에 비교적 강하고, 열근[갈라지는 현상]과 바람들이[바람이 듦]가 적어 재배에 용이하며, 근비대[근섬유의 크기 증가]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단무지용 무는 크기와 모양의 균일도가 높을수록 상품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잡종 종자를 사용하여 재배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단무지용 무는 다른 농작물에 비하여 시설과 자본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으며, 최근엔 다양한 농업 기계 개발로 재배에 필요한 노동력까지 감소하게 되었다.
다만 단무지용 무 재배 시 유의할 사항으로 위황병 예방과 인공 관수 등이 있다.
단무지용 무는 보통 연작 형태로 재배되기 때문에 토양을 통해서 전염되는 병인 위황병에 특히 취약하며, 아직까지는 이에 대한 방제 방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생산자들의 특히 신경써야 할 요인이다.
단무지는 또 사질토에서 자라기 때문에 가뭄이 길어졌을 때 스프링클러나 호스 등과 같은 인공 관수를 통한 적절한 수분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품질 저하나 수량 감소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각별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
[조치원 단무지의 미래]
단무지 가공업자들은 단무지를 생산자와의 사전계약재배를 통해서 공급받는다.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은 충청남도 부여와 함께 가장 많은 단무지 가공업체가 있는 곳이다.
증언에 따르면 설립 초기에는 조치원 내 단무지 공장들이 인근 재배지에서 생산된 무만으로 단무지를 생산하였으나 단무지 생산량이 대폭 늘어나게 되면서 지금은 강원도, 경기북부, 경상북도 등 전국 각지에서 단무지무를 구매하여 가공하고 있다고 한다.
단무지용 무의 생산량에 관해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국내에서만 약 9,900㎡[약 3,000평] 면적에서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조치원 지역은 가장 먼저 단무지 절임 공장과 단무지용 무 재배지가 도입된 곳으로, 한때는 국내 단무지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특히 번암리 일대에 단무지용 무 재배가 널리 성행하였다고 한다.
1980년대에 들어와 경제 호황과 더불어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늘어나게 되면서 김밥 수요가 급증하였고, 이는 단무지 수요 증대로 이어졌다. 조치원에 위치한 단무지 공장 역시 생산량을 대폭 증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국으로 단무지를 실어 나르는 대형트럭이 수 킬로미터의 행렬로 이어져서 세 시간 이상씩 기다려야 하였으며, 조치원읍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단무지 공장에 투입되어 하루 종일 생산에 매달려야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먹거리의 다양화로 인하여 김밥 수요 감소가 시작되는 2000년대까지 약 15년간 지속되어 조치원읍, 특히 번암리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과거의 명성에 비하여 규모가 다소 작아지긴 하였으나 현재도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은 국내 단무지의 10% 이상을 생산, 공급하고 있다.
한편 2013년 한 공중파 언론에서 중국산 수입 단무지를 국산으로 둔갑시켜 판매한 어느 단무지 공장의 실상과 열악한 위생 상태를 보도하는 바람에 단무지 업계 전체가 매출 감소의 파고를 맞았을 때에도 조치원 소재의 단무지 생산 기업은 해당 언론사를 통하여 모범업체로 선정되는 등 세종특별자치시 단무지는 위생과 안전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