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8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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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百將軍傳說 |
이칭/별칭 | 오백나한,오백장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
집필자 | 현승환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75년 3월 4일 - 「오백 장군 전설」 대정읍 안성리 강문호에게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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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76년 4월 20일 - 「오백 장군 전설」 『제주도 전설』에 수록 |
관련 지명 | 영실|바굼지오름 - 서귀포시|대정읍 |
채록지 | 강문호 -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
성격 | 전설|효행담 |
모티프 유형 | 굶주린 자식이 어머니 희생으로 효를 깨닫고, 암석을 증거물로 하는 이야기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서 오백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오백 장군 전설」은 굶주리는 아들을 위해 죽을 쑤다가 죽솥에 빠져 죽은 어머니와 그 어머니가 빠져 죽은 죽을 먹은 자식들이 영실의 바위가 되었다는 효행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59년 안덕면 화순리 문인길에게서 채록되어 진성기의 『제주도설화집』에 수록된 이야기에서는 한 할머니가 500명의 아들을 낳았다고 하여 ‘오백장군’으로 전승된다. 그 이후 자료인 장주근의 『한국의 신화』에서는 1961년 한경면 판포리 변인선[여, 52세]이 제보한 이야기로 설문대할망이 500장군을 낳은 것으로 수록되어 있다. 1975년 3월 4일 대정읍 안성리 강문호[남]에게서 채록되어 현용준의 『제주도 전설』에 수록된 자료는 ‘오백장군(五百將軍)’이다.
[내용]
옛날 어떤 어머니가 아들 오백 형제를 데리고 사는데, 흉년이 들어 자식을 먹여 살리기 어려웠다. 하루는 아들들이 양식을 구하러 간 사이에 죽을 끓이다가 죽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아들들은 귀가 후 배고픈 김에 허겁지겁 죽을 먹기 시작했다. 막내가 죽을 뜨려다가 사람의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머니임을 알았다. 막내는 어머니고기 죽을 먹은 불효한 형들과 같이 있을 수 없다며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 한없이 울다가 바위가 되어 버렸다. 형들도 통탄하다가 영실에서 바위로 굳어버렸다.
한 지관이 대정읍 바굼지 오름에 묫자리를 구하려 하다가 차귀섬의 오백장군이 보이는 게 흠이라 했더니, 상제는 차귀섬으로 건너가 도끼로 그 바위를 찍어버렸다.
[모티프 분석]
굶주린 자식에게 먹일 죽을 끓이다가 어머니가 죽솥에 빠져 죽었는데 어머니를 확인하지 않고 그 죽을 먹었다는 것은 자식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따라서 「오백 장군 전설」은 불효 모티프이며, 그 증거는 암석으로 남아 교훈적 효과를 거둔다. 막내는 형들과 같이 살 수 없다며 고산리 차귀도에 가서 울다 바위가 되었는데, 풍수적으로 명당이 막내의 모습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그 바위를 깨뜨렸다는 것은 풍수 모티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