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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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庶子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홍동|서홍동 |
집필자 | 현승환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동홍동과 서홍동에서 오서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서귀읍 홍노(烘里)에 신분은 서자이지만 착한 마음을 갖고 살던 오서자가 있었다. 그의 행위에 감동하여 죽은 사람의 영혼이 도와주어 오서자가 적자와 같이 부모제사에 참례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75년 3월 2일 남원면 태흥리 김기옥[남, 70세]에게서 채록되어 1976년 4월 20일 현용준의 『제주도 전설』에 ‘홍노 오서자(吳庶子)’로 수록되었다.
[내용]
서귀읍 홍노(烘里) 오씨 댁의 한 서자가 성산읍 고성리 남문집에 양자로 들어갔다. 적서(嫡庶) 차별이 심한 시대여서 오서자는 자신을 낳아준 부친의 제사에 참례하러 갔지만 바깥 난간에서 참배하고 돌아가야 했다.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오서자는 성산에서 홍노까지 매년 걸어서 생부의 제사에 참례했다. 어느 해는 제사에 참례하려고 걸어서 산길로 접어들었는데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칼을 꺼내 가시덤불을 끊어 내치고 고총(古冢) 안에서 비를 피하다 잠이 들었다. 영혼이 가시덤불을 치워 줘 감사하다며 보답으로 제물을 주겠다고 했다. 잠을 깨어 걸어 효돈리 큰내를 지나는데 노루가 나무 틈에 끼어 죽어 있었다. 제사집에 노루를 메고 갔더니 부친 제사에 귀한 노루를 제물로 갖고 왔다며 그 성의를 인정받고 적자와 동등하게 참배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마운 마음에 고총을 소분 하다가 비석을 찾았다. 훌륭한 집안에서 실묘하여 지금까지 소분도 못하던 곳임을 알고 후손을 찾아주었다.
[모티프 분석]
조선 시대에는 적서(嫡庶) 구분이 엄격했었다. 따라서 서자가 적자와 동등하게 부모의 제사에 참례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홍노 오서자 전설」은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설화이다. 오서자는 서자 신분이지만 고총(古冢)을 소분해 줄만큼 조상을 성심으로 모시는 마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영혼이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귀한 노루를 제물로 쓸 수 있게 제공한 것이다. 이는 현재의 신분제도가 허락하지 않는 부모에 대한 예의의 부당함을 영혼을 등장시켜 지적하고 참례할 수 있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