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38
한자 玉蓮里
영어공식명칭 Ongnye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련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련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련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옥련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04㎢
가구수 172가구
인구[남/여] 296명[남 155명/여 141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성주 지역과 관련한 지지에서 ‘옥련(玉蓮)’ 지명 유래와 관련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옥련1리의 자연 마을로 안여실[안여의실]과 새골[봉동(鳳洞)]이 있고, 옥련2리의 자연 마을로 아랫상삼[상삼(上三·象三)], 못안상삼[지내상삼(池內上三)·지산(池山)]이 있다. 안여실은 대가면 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한 옥성리 여실[여의실]과 인접한데, 대가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지방도 제913호선을 따라 북쪽 내리막길로 250여 m 정도 떨어진 도로 동쪽에 형성되어 있다. ‘여우’와 관련한 지명인 여실[여의실]의 산자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 ‘안여실’이라 불렀다. 새골대가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서쪽으로 국도 제33호선을 따라 800m 정도 떨어진, 대가초등학교 앞 국도 건너 아래쪽에 자리한다. 옛날 마을 가운데에 큰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오동나무에는 봉황이 깃든다고 여겨서 ‘봉동(鳳洞)’ 또는 ‘봉리(鳳里)’로 불렀다고 하며, 다른 얘기로는 마을 뒷산을 새[鳳]와 관련지어 ‘새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아랫상삼은 대가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서쪽으로 1.7㎞ 정도에 떨어져서 국도 제33호선 변 서쪽 200m 삼산 저수지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뒷산인 상산(象山) 아래에 계곡을 따라 3개의 마을이 나란히 형성되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한편으로는 마을에 박(朴)·배(裵)·하(河) 세 성씨가 산다고 해서 ‘상삼(象三)’ 또는 ‘삼산(三山)’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못안상삼은 대가면 행정복지센터에서 국도 제33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약 2㎞ 지점에 있는 삼산못 안쪽에 자리한다. 삼산못 안쪽에 있다고 해서 ‘못안상삼’이라고 하며, 지산이라고도 부른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대부분 지역이 대가곡방(大家谷坊)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대가곡방을 대가방(大家坊)으로 바꾸었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대가면의 여의동(余衣洞), 봉동(鳳洞), 상삼동(上三洞), 지산동(池山洞), 산양동(山陽洞) 일부와 사천면(沙川面)의 여의동(余衣洞) 일부를 합하여 옥련동으로 하고 대가면과 사천면, 금파면을 합한 대가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대가면 옥련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북쪽 흥산천의 충적 평야를 제외하면 봉동 뒷산인 봉두산(鳳頭山)[110.5m], 옥련2리 아랫상삼마을 뒷산인 상산(象山)[173.3m] 등 대부분 지역은 150~200m 높이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을 둘러싼 산지에 여실재[여의실재], 꽃고개[화령(花嶺)] 등이 있다. 옥련리의 산지에서 발원한 하천 중 봉동천(鳳洞川)은 화령지(花嶺池)에 모였다가 봉동 아래에서 흥산천(興山川)으로 유입되고, 상삼천(上三川)은 아랫상삼을 거쳐 흥산천에 유입된다. 하천은 산지 곳곳에 꽃골, 둔두골, 안골, 웃안골, 큰골, 달골, 음달골 등의 골짜기를 만들었고, 말미들과 밑바닥들, 공점들 등의 곡저 평야를 형성하였다.

[현황]

옥련리대가면의 서쪽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 남부는 대가면흥산리용흥리, 옥성리, 금산리, 서부는 금수면 명천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04㎢이고, 옥련1리와 옥련2리 2개 행정리에 172가구, 296명[남 155명, 여 14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지방도 제913호선이 동쪽에서 북남으로 지나가고 국도 제33호선이 남쪽에서 동서로 지나간다. 1935년 개교한 대가초등학교봉동 남서쪽에 있다.

문화 유적으로 조선 후기 유학자인 인동 장씨(仁同張氏) 신와(愼窩) 장정옥(張挺玉)[1626~1698]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독신재(篤愼齋), 진주 하씨(晋州河氏) 상삼 입향조인 하득천(河得千)과 그 아들 하정국(河正國), 손자 하응인(河應仁) 3대를 모시는 재실인 경모재(敬慕齋),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배윤(裵閏)과 아들 배성겸(裵聖謙) 부자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모원재(慕遠齋), 조선 후기 의정부 좌찬성에 증직된 진주 하씨 하영호(河永浩)[1794~1855]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신와정(新窩亭)과 유지비(遺址碑), 조선 후기 인물인 하일청(河一淸) 6형제의 우의를 기리기 위한 육우당(六友堂) 및 하득천 유허비(河得千遺墟碑), 현감 나상지(羅尙之)의 딸인 열부 수성 나씨(壽城羅氏)의 정려각(旌閭閣), 배성겸 적표비(裵聖謙蹟表碑)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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