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44
한자 大川里
영어공식명칭 Daeche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대천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대천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대천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대천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78㎢
가구수 113가구
인구[남/여] 198명[남 106명/여 92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금파면(今巴面)의 낙산동(洛山洞), 부명동(夫明洞), 석정동(石亭洞), 후동(後洞), 보은동(報恩洞), 이천동(伊川洞) 일부를 합하고 대천동(大川洞)이라 이름하였는데, 정확한 유래는 찾기 어렵다. 대천1리의 자연 마을로 까막구딩[행정(行停·杏亭)·행지(行止)]과 뒷골[후동(後洞)·부처골]이 있고, 대천2리의 자연 마을로 장밭[장전(長田)·낙산(落山)·굴뫼기·굴미기·굴목이·부명(夫明)]과 새뜸[신기(新基)·윗굴뫼기·보은(報恩)]이 있다.

까막구딩은 대천리 제일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까막구딩에서 서쪽으로 800m 정도 떨어진 곳에 대가천이 흐르고 북쪽에는 동천산(東泉山)[291.3m]이 있다. 마을에 옛날부터 옹기를 구운 가마가 있었는데, 이로 인해 불에 검게 탄 흙이 많아 까막구딩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행정(行停)은 옛날 가천면 창천리와 고령군 등으로 오가는 소장수들이 소를 몰고 가다가 쉬어 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행정(杏亭)은 옛날 이 마을에 살구나무가 있는 정자가 있어 불은 이름이라고 한다. 뒷골은 까막구딩 뒤쪽에 자리한 마을로 1929년[기사년]에 일어난 대홍수로 현재의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 남쪽에 있던 석정(石亭)과 현재의 마을 뒤쪽에 있던 큰뒷골에 살던 주민들이 이주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이주민들이 마을을 형성하면서 골짜기 이름을 따서 뒷골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부처골은 뒷골 마을 뒷산인 동천산 골짜기에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장밭[장전(長田)]은 다락산(多樂山)[360.7m] 자락에 있는 마을로, 다락산 줄기가 뻗어 나와 골이 긴 경작지를 형성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굴뫼기는 대가천 변의 상하 500m 지점에 있는 3개[윗굴뫼기·중굴뫼기·아랫굴뫼기]의 자연 마을이다. 대가천의 공격 사면에 해당하여 하천이 받아 돌아 걸[渠] 가의 수륜면 수성리와 나들목이 되고, 산 넘어 수륜면 송계리와 넘나드는 고개 길목이 되어 걸목이 본래의 지명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옛날 옹기굴이 있어서 마을 이름을 불목이 또는 굴목이라고 불렀다는 설과 큰 굴이 있어 굴미기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윗굴뫼기는 새뜸이라 부르며, 중굴뫼기를 보통 굴뫼기라 부른다. 굴뫼기는 한자로 부명(夫明)이라 표기하기도 한다. 새뜸은 국도 제33호선의 대천 삼거리에서 수륜면 수성리 방면으로 약 1㎞ 지점의 도남천 동쪽에 자리한다. 굴뫼기에 속하지만 보통 독립적으로 새뜸이라고 부른다. 본래 순천 박씨(順天朴氏)가 모여 살다가 떠난 후 마을이 사라졌다가 광복 후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게 되면서 새뜸이라 불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대부분 지역이 금파곡방(今巴谷坊)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금파곡방을 금파방(今巴坊)으로 바꾸었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금파면의 낙산동, 부명동, 석정동, 후동, 보은동, 이천동 일부를 합하여 대천동으로 하고 금파면과 대가면(大家面), 사천면을 합한 대가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대가면 대천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대천리는 북서쪽과 남동쪽에 솟아 있는 산지와 중앙과 남부에 펼쳐진 평야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북서쪽은 가천면 창천리와 면계(面界)를 이루는 동천산(東泉山)[291.3m]과 약 250m 높이의 산지가, 남동쪽은 수륜면 송계리와 면계를 이루는 다락산(多樂山)[360.7m]과 약 300m 높이의 산지들이 분포한다. 대천리의 남부는 대가천의 범람원인 증보들 등이 삼각형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고, 중앙에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대천리를 가로지르는 국도 제33호선을 따라 도남천의 범람원인 안들, 드라지들, 신물들, 새들 등이 있다. 도남천은 대가면 도남리 언천이 마을 아래에서 금곡천과 합하고, 대천2리 굴목이 마을 아래에서 대가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이다. 이들 하천은 동쪽과 서쪽의 산지에 반작골, 새닦골, 웃재골, 종심골 등의 골짜기를 만들었다.

[현황]

대천리대가면 행정복지센터에서 국도 제33호선을 따라 서쪽의 가천면 쪽으로 약 5.3㎞ 정도 떨어진 대가면의 남서쪽에 자리하여 동부와 남부는 수륜면, 서부는 가천면, 북부는 대가면도남리, 옥화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78㎢이며, 대천1리와 대천2리 2개 행정리에 113가구, 198명[남 106명, 여 9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마을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국도 제33호선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지나가고, 국도 제33호선 북쪽 대천 교차로에서 북쪽 금수면으로 향하는 군도가, 중앙 굴목 교차로에서는 서쪽의 가천면으로 향하는 군도가 갈라지는 분기점이 있다. 1994년 개원한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와 대가농협 대천지소 등이 자리한 대가면 서부 지역의 중심지이다. 문화 유적으로 한주석(韓周錫), 성한호(成漢鎬), 배세도(裵世度)의 영세 불망비(永世不忘碑)를 모아 둔 대천리 비석군(大川里碑石群), 까막구딩 서편인 동천산(東泉山)의 남쪽 산 사면 기슭 일대에 삼국 시대 석곽묘군으로 알려진 대천리 고분군(大川里古墳群)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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