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61
한자 七仙里
영어공식명칭 Chilse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칠선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기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칠선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칠선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칠선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567㎢
가구수 201가구
인구[남/여] 372명[남 189명/여 183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592년(선조 25)쯤 벽진 이씨(碧珍李氏)가 입향하여 마을을 개척하고 ‘문치(文致)’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칠선(七仙)’으로 개칭하였는데 정확한 지명 유래는 찾을 수 없다. 자연 마을로 궁전(弓田), 서원골[원동(院洞)], 평정(平亭), 문치골[문치곡(文致谷)], 산막골[산막곡(山幕谷)] 또는 연포(連浦)가 있다.

궁전은 지형이 활[弓]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평정의 경우, 조선 후기 평진(平津)이라는 들이 있었으나 수해로 매몰된 후 현 위치에 마을이 조성되어 ‘평지(平地)’라고 하였는데, 1930년께 마을 앞에 큰 정자나무가 있다고 평정으로 고쳐 불렀다. 문치골은 약 300년 전 벽진 이씨 문중의 한 선비가 7년간 글공부를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마을 사람들이 선비의 넋을 위로하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문치라고 하였다. 서원골은 마을에 서원답(書院畓)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산막골은 조선 후기 인동 장씨(仁同張氏)가 마을 뒷산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면서 불린 이름으로, 1800년쯤 마을 입구에 연못이 생겨 연포(連浦)라고 고쳐 불렀다가 1900년께 연못이 없어지면서 다시 산막골이라 부른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초전방(草田坊)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칠선동으로 하고 초전면과 유곡면, 망성면의 일부를 합한 초전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52년 행정동을 칠선1동과 칠선2동으로 나누었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초전면 칠선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구릉성 평지에 자리하여 앞쪽으로 백천(白川)이 흐르고, 마을 서쪽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산봉우리로는 갈리봉이 있고, 대티[고개], 뒷미 고개, 와룡 고개, 소래 고개, 성황당(城隍堂) 고개 등이 있다. 골짜기로는 작은서원골, 큰서원골, 가라골, 가작골[佳雀谷], 뒤골, 밤수골, 정자골, 황태골이 있고, 궁전천(弓田川)과 서원골천[書院谷川], 문치천(文致川), 삼막천(三幕川)이 흐른다. 문치지(文致池)라는 못이 있고, 안굼과 봉답들, 번답들, 작은선골들, 큰선골들, 구바위들, 앞들, 천리들과 같은 들이 마을 주변에 있다.

[현황]

칠선리초전면의 동남쪽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는 초전면 대장리성주군 월항면장산리, 보암리, 남부와 서부는 성주읍 금산리초전면 용성리, 문덕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567㎢이고, 칠선1리와 칠선2리 2개 행정리에 201가구, 372명[남 189명, 여 18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지방도 제905호선 왼쪽 나지막한 산자락 밑에 선석산(禪石山) 쪽을 바라보고 자리 잡고 있는 칠선리는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문화 유적으로 경모재(景慕齋)가 있는데, 유후맹(柳厚孟)의 후손 유광주(柳光州)를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세운 재실(齋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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