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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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忠事蹟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심산로 91-1[경산리 763-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도영 |
건립 시기/일시 | 1792년 - 쌍충사적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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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92년 - 제말 사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58년 - 제홍록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97년 - 제홍록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4년 12월 10일 - 쌍충사적비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 |
현 소재지 | 쌍충사적비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심산로 91-1[경산리 763-1] |
원소재지 | 성주초등학교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읍4길 9[경산리 183] |
성격 | 사적비|기적비 |
양식 | 입비 |
관련 인물 | 제말|제홍록|서유린|이병모|조윤형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216㎝[높이]|79㎝[너비]|37㎝[두께] |
관리자 | 성주여자고등학교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있는 제말 장군과 조카인 제홍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792년 세운 비.
[개설]
제말(諸沫)[?~1592]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웅천(熊川)·김해(金海)·의령(宜寧)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으며 성주성 싸움에서 전사했다. 조카인 제홍록(諸弘祿)[1558~1597]은 제말과 더불어 큰 전공을 세웠으며,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했다.
[건립 경위]
쌍충사적비(雙忠事蹟碑)는 임진왜란 때 영남 지방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과 싸우다가 성주성(星州城) 싸움에서 전사한 제말 장군과 1597년 정유재란 때 포위된 진주성(晋州城)을 지원하기 위해 출전하다 갑자기 적을 만나 적장을 죽이고 전사한 조카 제홍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792년(정조 16)에 건립되었다.
[위치]
쌍충사적비는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성주여자고등학교 입구 맞은편에 있다. 본래는 성주초등학교 앞 길가에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관헌에 의해 비각이 헐리고 방치되었던 비를 1940년경 성주초등학교 운동장을 넓히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이다.
[형태]
받침돌 위에 비신을 올리고 이수를 얹은 모습이다. 이수는 서로 엉킨 두 마리의 용이 머리를 맞대고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전체 높이 325㎝, 비석 높이 216㎝, 너비 79㎝, 두께 37㎝이다.
[금석문]
비문은 서유린(徐有隣)이 짓고, 이병모(李秉模)가 글씨를 썼으며, 성주목사를 지냈던 조윤형(曺允亨)[1725~1799]이 비의 제목을 새겼다. 두전(頭篆)에는 ‘제씨쌍충사적비(諸氏雙忠事蹟碑)’라 되어 있다.
[현황]
1974년 12월 10일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矗石樓) 뒤편에 ‘진주 쌍충사적비(晉州雙忠事蹟碑)’라는 명칭으로 같은 비가 하나 더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후기의 석비 양식을 보여주는 거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