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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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慕明齋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로 127[보월리 34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지아 |
건립 시기/일시 | 1963년 - 모명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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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모명재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로 127[보월리 349] |
성격 | 재실 |
양식 | 팔작지붕집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반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에 있는 재실.
[개설]
모명재(慕明齋)는 명나라 장수 시문용(施文用)[1572~1623]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시문용은 중국 저장성[浙江省] 출신의 명나라 장수로, 병부 시랑(兵部侍郞) 시윤제(施允濟)의 아들이다. 호는 명촌(明村)이며, 우리나라 절강 시씨(浙江施氏)의 시조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유격장군(遊擊將軍) 남방위(藍方威) 휘하의 행영중군(行營中軍)으로 참전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부상을 당하여 명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성주 지역에 거주하였다. 선조(宣祖)가 전공을 포상하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제수(除授)하였고, 성주를 본관으로 하사하였다. 시문용은 풍수에 정통하여 1616년(광해군 8)에 정인홍(鄭仁弘)의 추천으로 궁궐 및 왕릉 축조 사업에 참여하여 많은 업적을 쌓았으나,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나자 성주 지역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모명재는 그리워할 ‘모(慕)’와 명나라 이름 ‘명(明)’자를 써서 ‘명나라를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위치]
모명재는 성주군 수륜면 보월로 127[보월리 349번지] 아래마찔에 있다. 형곡동(兄谷洞) 마을의 위쪽을 상형곡(上兄谷) 혹은 웃마찔이라고 하고, 아래쪽을 하형곡(下兄谷) 혹은 아래마찔이라고 한다. 시문용의 아들 시영건과 시영달 형제 중 아우가 분가하여 아래 마을로 내려가게 되자 형이 살던 곳을 형곡(兄谷)이라고 불렀다.
[변천]
모명재는 1963년에 후손들이 시문용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 중앙에 마루 2칸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 1칸을 배치한 중당 협실형 구조이다.
[현황]
모명재 곁에 별묘를 세워 시문용을 불천위(不遷位)로 봉안하고 있으며, 아래마찔의 뒷산 능선에 시문용의 묘가 있다.
[의의와 평가]